살아있는교육 29

가난한 삶에서 피어난 어머니들의 노래

찔레꽃

무선 | 153×225 mm | 204 쪽 | ISBN 9788984287525

 

이 책은 2007년부터 2010년까지 경남여고 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 학생들 94명이 쓴 시를 엮었다. 적게는 삼사십 대에서 많게는 칠십 대까지 여성들이 살아온 세월과 지금의 이야기를 한 자 한 자 정성껏 풀어냈다.

청소년~성인

펴낸날 2012-05-01 | 1판 | 구자행 | 글 경남여고 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 94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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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줍은 여고생이 되어 부르는
우리 어머니들의 노래

 

 이 책은 2007년부터 2010년까지 경남여고 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 학생들 94명이 쓴 시를 엮었다. 적게는 삼사십 대에서 많게는 칠십 대까지 여성들이 살아온 세월과 지금의 이야기를 한 자 한 자 정성껏 풀어냈다.
방송통신고등학교는 형편상 제때 배움을 다하지 못한 분들을 위한 학교다. 이분들은 늦깎이 여고생이 되어서 한 달에 두 번 학교에 나갔고, 보통 고등학생들처럼 여러 과목을 공부하고 시험도 치고 소풍도 갔다. 국어 교사인 엮은이는 이 특별한 학생들한테 국어 문제집을 풀게 하는 대신, 용기를 주며 함께 글쓰기를 해 나갔다. 그리고 귀한 글들을 모아 네 해 동안 해마다 문집으로 엮었다. 그 문집들에서 추린 시를 《찔레꽃》으로, 산문을 《꽁당보리밥》으로 따로 펴냈다.


어머니한테 드리는 가장 좋은 선물

 이 책은 어머니들이 가난 때문에 학교를 그만둬야 했던 어린 시절, 서울에 올라와 공장 다녔던 일,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일, 노부모를 하늘로 떠나보낸 일에 이르기까지 살면서 겪어온 오만 가지 일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또한 늦깎이 여고생이 되어 설레는 마음으로 학교 다니는 모습, 남편과 아이에 대한 애틋함, 일상을 이루는 소소한 생각들, 자연에 대한 경탄처럼 현재의 이야기들도 아울러 담고 있다. 구십여 명이 풀어 놓는 저마다의 삶이고 마음인데, 이것들이 서로 놀랍도록 닮아 있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우리한테도 전혀 낯설지 않다. 바로 내 어머니가 겪어온 일들, 띄엄띄엄 들려주었던 가슴속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글쓴이들과 비슷한 세월을 함께 지나온 독자들은 자신들과 닮은 상처를 그대로 드러내면서 치유하는 이 글들에 큰 위로를 받을 것이다. 오십이 되어 “살면서 이만큼 소중한 시간이 있었나” 자문하고, 육십이 넘어 이제야 날개를 달았고 아직도 꿈이 많다고 고백하고, 일흔이란 나이에서 0을 떼고 “일곱 살 계집아이처럼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저 마냥 신나서 학교로 가련다” 결심하는 학생들을 보며 용기를 얻을 것이다. 나아가 자신 또한 늦깎이 배움을 시작해야겠다거나 살아온 이야기를 글로 적어봐야겠다는 결심이 서기도 할 것이다.
이삼십 대 젊은 독자들은 자신의 어머니를 모진 세월을 꿋꿋이 이겨내고 그 자리에 선 한 인간으로서 새롭게 이해하는 계기가 될 것이며, 읽고 나서 어머니에게 권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선물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시를 쓰노?”
 중고등학교도 못 나왔다는 데 주눅 들어 살아온 분들이 하물며 자신이 글을 쓰고 책을 낼 수 있다고는 꿈에도 생각해본 적 없었을 것이다. 그런 꿈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엮은이는 자기가 한 일은 그저 ‘물꼬를 터준 것뿐’이라고 말한다. 그러자 어머니들은 차마 식구들한테도 말할 수 없었던 가슴속 응어리들을 기다렸다는 듯 풀어 놓았다. 경제 상황과 성별 탓에 사회적 약자로 억눌려 살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들이 이제라도 연필을 잡고 자기 목소리를 내었다는 것은, 자기자신한테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매우 값진 일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힘을 갖는 일이기 때문이다. 서러운 세월 속에서도 정직하게 일해온 우리 어머니들이 가져 마땅한 힘을 늦게나마 돌려주는 것이다.

 

시를 읽어 드리는데 어느새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들이 몸소 겪은 바로 그 일이다. 시는 이런 것이고, 시를 쓸 때는 이렇게 써야 한다는 설명이 따로 필요 없다. 옆에 친구가 쓴 시 한 편이 시 쓰기를 하는 좋은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

그렇지만 우리도 한번 시를 써 보자고 하면 영 자신 없다는 표정이다. 몇몇 분은 벌써 쓸 거리를 찾았다는 듯이 눈빛이 반짝하지만, 대부분은 ‘시는 시인이나 쓰는 거지 우리가 어떻게 쓰노?’ 하는 표정이시다.
한 시간이 사십 분이라 금세 지나간다. 그래도 이것 한 가지는 꼭 말씀드려야 한다. 화려한 기교로 그럴듯하게 꾸며 쓰면 시가 되지 않는다는 것.
_《찔레꽃》 함께 공부한 이야기 ‘봄비에 꽃이 피듯 시가 피어났다’에서

 

 이 책은 말을 할 줄 알고 한글을 뗀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만의 시를 쓸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분들한테 맞춤법이나 표준어, 문학적 수사나 기법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살아온 이야기 그대로, 지금 느끼는 그대로를 말하듯이 풀어내는 것이 전부였고 그것으로 충분한 작업이었다. 거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군더더기를 되도록 줄이고 한 가지 그림에 집중해서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엮은이는 문집을 내고자 이분들 글을 옮겨 적을 때 뚜렷하게 틀린 글자 말고는 거의 손을 대지 않았고, 출판사에서 이루어진 편집 과정 또한 그 원칙을 따랐다. 그래서 어머니들이 평소에 쓰는 입말과 사투리들이 고스란히 살아 있어 읽는 맛을 더한다. 다만 뜻을 짐작하기 어려운 말들은 주를 달고 맨 끝에 풀어 놓아서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했다. 

 

엮은이 구자행
 1963년 경상남도 진양에서 태어나 경상대학교 국어교육과를 나왔다. 1985년 국어 교사가 되어 부산에서 고등학교 아이들과 지내고 있다.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서 활동하면서 고등학교 아이들과 삶을 가꾸는 글쓰기를 하고, 그 글을 모아 해마다 문집을 엮어 왔다. 문집으로 <외갓집 가는 마음> <할아버지 담배> <버림받은 성적표> <밥상 앞에서> <꽃잎> <마지막 용돈> <담배 물고 있는 할머니> <내일은 또 어쩌지> <쑥밥> <학교 가는 날> <찔레꽃> <진흙 속 한 줄기 연꽃> <기절했다 깬 것 같다> 들이 있다. 아이들 시를 엮어 펴낸 시집으로 《버림받은 성적표》(보리, 2005)와 《기절했다 깬 것 같다》(휴머니스트, 2012)가 있다.


《찔레꽃》 본문 시 맛보기

 

나는 할머니 학생

김정옥  61세


나는 할머니다

네 손주의 할머니다

몇 개월만 있으면 한 녀석이 또 태어난다

나는 일남 이녀의 어머니다

나는 나이고 싶다

하지만 내 인생에 열매가 영글었다

아주 빛나는 나의 보석들이다


나는 할머니다

요즘 나는 한 손주를 키우고 있다

아직 발음도 서툰 말로 할미라 부른다

손주 녀석과 종일 있다 보면

내 마음도 순수해진다

첫 손주가 할미라고 부를 때 나는 무척 쑥스러웠다

하지만 이젠 내가 나를 할머니라 부른다

나는 행복하다

아주 예쁜 보석들이 있으니까


나는 할머니 학생이다

내 나이 육십일 세다

나의 아들딸보다 어린 학우도 있다

그래도 내 마음은 동심이다

세포는 늙어도 생각은 아이다

젊은 시절 하지 못한 공부

늦게나마 할 수 있어 참 좋다

나는 날개를 달았다

아직도 나는 꿈이 많다

즐겁게 수업해 주시는 선생님들이 있어

나는 행복한 할머니 학생이다

 

찔레꽃

엄명자  55세

도심 녹색 철담장에 기대어 무수한 진초록 잎사귀 사이사이에 하얀색 작은 꽃이 소롯이 피었습니다. 염색 머리 밑둥이 희끗희끗한 여자가 바라다봅니다. 황금술을 가운데 두고 얇뜨레한 홑꽃잎 다섯 장 다소곳이 마주 보고 웃습니다.

물기 자작한 산기슭에 초록 이파리 하얀 꽃이 다복하게 무리를 이루어 피었습니다. 까만 단발머리 어린 여자애가 주위를 맴돌며 순을 찾고 있습니다. 등에는 저만 한 아기가 발갛게 달궈진 얼굴을 옆으로 떨군 채 잠들어 있습니다. 아기의 엉덩이를 받치고 몸통을 감은 띠개비*는 어린 여자애의 양쪽 어깨 위를 지나 옆으로 꼭 동여매여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산딸배기밭에 엄마가 있습니다. 밝은 수건으로 햇볕을 거란* 엄마가 밭이랑 사이로 희끗합니다.

 

*띠개비 : 포대기를 묶는 끈

*거란 : 가린

 

 

 

엮은이의 말 |

이분들이 살아온 삶을 누가 알까?



1부 나는 할머니 학생

나는 할머니 학생 김정옥 61세 ‥15

학교 가는 날 황의숙 58세 ‥ 17

육십은 꽃봉우리 강복진 60세 ‥ 18

비 그치고 나서 권영덕 48세 ‥ 20

나의 꿈 이정희 56세 ‥ 21

비상 정소희 48세 ‥ 22

학교 가는 날 아침 조신향 50세 ‥ 24

아름다운 시절 김영숙 51세 ‥ 26

엄마 강선심 47세 ‥ 28

걸음마 강선심 47세 ‥ 30

늦게 핀 장미꽃 강선심 47세 ‥ 31

중년이란 이름 뒤에 박을숙 53세 ‥ 32

고백 나금희 48세 ‥ 33

인생 2막 문명숙 53세 ‥ 34

고등학교 입학식 김옥순 46세 ‥ 36

말 못 하는 나 박명희 45세 ‥ 38

쓸 수가 없는 볼펜 두 자루 박명희 45세 ‥ 39

작심삼년이 되기를 이창희 44세 ‥ 40

뭘 하나 잘하는 게 없어요 안혜영 56세 ‥ 42

도시락 오석엽 59세 ‥ 43

어려운 숙제 이갑연 55세 ‥ 44

공부 최인순 61세 ‥ 45

여고생 남순이 50세 ‥ 46

노인 여고생 이점도 54세 ‥ 48

진흙 속 한 줄기 연꽃 서옥자 67세 ‥ 49

세월과 동지 심정희 49세 ‥ 50

일흔 살의 계집아이 김춘자 71세 ‥ 52


2부 내 새끼

남편 최영숙 59세 ‥ 55

감자 최윤선 40세 ‥ 56

우리 언니 백순선 53세 ‥ 58

옥수수 김수득 55세 ‥ 60

아버지와 고구마 최금순 65세 ‥ 61

아버지 이재언 46세 ‥ 62

그리움 김수자 54세 ‥ 63

우리 엄마 박영숙 51세 ‥ 64

금반지 최경숙 53세 ‥ 66

나의 짝지 이영순 59세 ‥ 67

울 엄니! 조신향 50세 ‥ 68

친정어머니 조영희 50세 ‥ 74

먼 길 떠난 당신에게 최명순 60세 ‥ 75

내 새끼 이숙조 42세 ‥ 76

추석 정필선 54세 ‥ 77

어머니를 뵙고 오는 길 박영숙 51세 ‥ 78

우리 엄마 정원예 59세 ‥ 80

우리 시어머니 김옥순 63세 ‥ 84

어머니의 육이오 정영림 35세 ‥ 85

나는 다시 태어나도 당신과 결혼할렵니다 박명순 48세 ‥ 87

가정 시간 김정순 62세 ‥ 92

못다 한 인연 그리움 되어서 류숙희 55세 ‥ 94

김 양식장에서 이재월 51세 ‥ 95

아버지 마음 박정순 71세 ‥ 96

아버지 생각 하윤순 50세 ‥ 97

아버지 황윤정 62세 ‥ 98

소 김영숙 53세 ‥ 99

아버지 생각 임금임 64세 ‥ 100

어머니의 눈물 이명자 44세 ‥ 101

아버지의 낚시 정말례 58세 ‥ 102

구멍 난 바지저고리 강갑연 63세 ‥ 103

어머니 문옥란 60세 ‥ 104

그리움 정복희 49세 ‥ 106

기억 속에 묻어 둔 엄마에게 김두리 61세 ‥ 108

아버지 한임순 59세 ‥ 111

아버지 윤미정 42세 ‥ 112


3부 커피를 못 마시는 까닭

가난한 시절 이야기 이미숙 39세 ‥ 115

정지대학 변정시 59세 ‥ 117

산딸기 김동점 50세 ‥ 118

어린 시절 내 고향 유상예 54세 ‥ 119

내 고향 박용임 61세 ‥ 122

살구 유선영 47세 ‥ 123

창피했습니다 김옥순 46세 ‥ 124

학교 다니던 시절 안옥재 59세 ‥ 126

우리 집 소 서계애 55세 ‥ 127

타작 황윤정 62세 ‥ 128

그리운 내 친구 오석엽 59세 ‥ 129

이불 정현숙 52세 ‥ 130

제삿밥 석청안 65세 ‥ 131

도회지와 직장 김순자 48세 ‥ 132

커피를 못 마시는 까닭 김영숙 41세 ‥ 133

이사 가시는 날 김애선 62세 ‥ 138

교복 백금숙 43세 ‥ 140

양말 공장 남명덕 59세 ‥ 141

딱! 한 숟가락만 차원숙 56세 ‥ 142


4부 마지막 이사가 되었으면

4월이 되면 김미애 40세 ‥ 145

까치고개 김경숙 54세 ‥ 146

시장에서 배영자 50세 ‥ 148

커피 한 잔 남정임 40세 ‥ 150

독거노인 남정임 40세 ‥ 152

이사 가던 날 구필순 57세 ‥ 155

빈터에서 희망을 박필애 44세 ‥ 156

쑥국 정경자 47세 ‥ 158

비가 온다 이명자 51세 ‥ 159

이웃사촌 여을순 60세 ‥ 160

벚꽃 박정순 70세 ‥ 161

같이 일하는 언니의 눈물 박명희 45세 ‥ 162

노 대통령의 죽음을 바라보며 박명희 45세 ‥ 164

텃밭에 앉아서 박명숙 62세 ‥ 165

고래고기 삼만 원 강지은 62세 ‥ 166

마지막 이사가 되었으면 임분임 63세 ‥ 168

석양 문명숙 53세 ‥ 169

까치의 마음 하정애 61세 ‥ 170

가을 하정애 61세 ‥ 171

돈나물 김치 안혜영 56세 ‥ 172

하루 안혜영 56세 ‥ 173

내 탓이다 문명숙 53세 ‥ 174

찔레꽃 엄명자 55세 ‥ 176

좋아 하선심 60세 ‥ 177

방귀 변정시 59세 ‥ 178

콩밭에서 빈말엽 56세 ‥ 179

봉선사에서 임금임 64세 ‥ 180

반찬 투정 박종금 55세 ‥ 181

종부(宗婦) 박영옥 61세 ‥ 182

그네 마은희 52세 ‥ 184

추석 김복숙 58세 ‥ 185



함께 공부한 이야기 |

봄비에 꽃이 피듯 시가 피어났다

미리보기 준비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