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 대하여
초등 학교에 들어가면 모든 아이들이 일기를 쓰기 시작하지요. 그런데 대부분의 아이들이 일기를 잘 쓰지 못합니다. 선생님이나 부모님이 쓰라고 하니까, 검사를 하니까, 숙제로 내주니까 마지못해 쓰지만 특별한 일을 생각해 내야 하고 반성할 만한 이야기를 쓰라고 하니 그럴 수밖에 없지요. 한두 줄 쓰고 나면 쓸 게 없는데 자꾸만 길게 쓰라고 하고, 글자도 틀리지 않아야 합니다. 일기를 잘 쓰면 글 쓰는 능력도 늘고 국어 공부도 잘 하게 되니까 열심히 쓰라고 한다지만, 선생님이나 부모님들은 억지로라도 일기 쓰기를 강요하고 그럴수록 아이들은 점점 일기 쓰기에 흥미를 잃어 갑니다.
일기 때문에 되풀이되어 온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새로운 일기 쓰기를 하는 아이들과 선생님이 있습니다. 《내가 처음 쓴 일기》를 펴낸 대구 금포 초등 학교 1학년 2반 아이들과 담임 교사인 윤태규 선생님입니다. 윤태규 선생님 반 아이들은 스스로 쓰고 싶어서 일기를 씁니다. 글자를 모르면 모르는 대로 쓰고, 일기를 쓰다가 모르는 글자를 써야 할 때는 그 글자에 동그라미를 해 두고 넘어갑니다. 비밀스러운 얘기를 쓰는 날은 그 날 일기장을 접어 두고요. 그러면 선생님도 읽지 않습니다. 한동안 지난 뒤에 더 이상 비밀이 아닌 이야기다 싶으면 아이 스스로 다시 펴 두기도 합니다. 이렇게 일기장을 두고 아이들과 선생님 사이에 깊은 믿음이 있기 때문에 아이들은 쓰고 싶은 이야기, 마음에 맺힌 이야기들을 무엇이든 일기에 담아 냅니다. 마음에도 없는 반성을 쓰게 하지 않으니까 선생님이 미우면 밉다고 쓰고 아버지 때문에 속상하면 속상하다고 씁니다. 착한 일, 특별한 일을 억지로 만들어 쓰게 하지 않으니까 하룻동안 지냈던 일을 꼼꼼히 짚어 보며 자세하게 쓰게 되지요. 무엇이든 자세하게 살펴보는 버릇을 기르기 위해 학교에서 선생님과 함께 돋보기를 들고 다니며 자세히 살펴보는 공부를 하고 일기를 쓰기도 하고요. 또 일기를 숙제로 내주지 않으니까 거짓 일기를 쓸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스스로 일기를 씁니다. 잠잘 시간에 쓰지 않으니까, 하고 싶은 이야기를 30분이고 한 시간이고 앉아서 오래도록 쓸 수 있지요. 차분히 하루 일도 되돌아보고 맺혔던 마음도 풀 수 있으니까 일기 쓰는 일이 즐겁고요. 그래서 윤태규 선생님 반 아이들에게는 일기 쓰기가 밥 먹고 똥 누는 일처럼 자연스럽습니다.
일기를 지겨운 짐으로 여기지 않고 자기를 표현하는 휼륭한 수단으로 삼는 윤태규 선생님 반 아이들의 일기 모음인 《내가 처음 쓴 일기》는 저학년 아이들에게 훌륭한 읽을거리가 될 것입니다.
이 책의 내용과 구성
《내 가 처음 쓴 일기》에는 1996년에 윤태규 선생님이 가르친 대구 금포 초등 학교 1학년 2반 아이들 32명이 처음으로 일기를 쓰기 시작한 날부터 학년이 끝날 때까지 반 년 동안 쓴 일기 가운데 125편을 실어 놓았습니다. 1장에는 7월 1일부터 여름 방학 때까지 쓴 일기를, 2장에는 9월부터 11월까지 쓴 일기를, 3장에는 겨울 방학을 지나 학년이 끝나는 다음 해 2월까지 쓴 일기를 모았습니다.
틀린 글자만 바로잡고 사투리나 입말, 말법에 어긋난 것은 아이들이 쓴 그대로 실었으며 일기글 밑에 따로 풀이를 해 주었고, 일기가 끝나는 곳에는 이 책을 읽는 어린이들을 위해 윤태규 선생님이 짤막한 도움말을 달아 놓았습니다. 저학년 아이들이 읽기 쉽게 글자도 큼지막하게 키우고 판형도 교과서 크기에 맞췄습니다. 아이들 일기글과 잘 어울리는 김성민 씨의 정성스러운 삽화도 읽는 맛을 더해 줍니다.
책 맨 뒤에는 윤태규 선생님이 이 책을 읽는 어린이들에게 주는 글과 선생님과 부모님들에게 주는 글을 실었습니다. 윤태규 선생님 반 아이들이 어떻게 일기를 쓰고 있는지 자세히 알려 주는 글이어서 일기를 쓰는 아이들이나 일기를 지도하는 어른들이라면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윤태규 선생님의 일기 지도 방법을 더 자세하게 알고 싶어하는 어른들은 위해 이 책과 함께 《일기 쓰기 어떻게 시작할까》도 동시에 출간되었습니다.
*다음은 이 책에 실린 일기글 가운데 한 편입니다.
1996년 11월 16일 토요일 춥다.
<눈높이> - 진제완
내가 눈높이를 안 해서 저녁에 아버지께서 째서 쓰레기통에 넣었다.
왜 쨌냐면 내가 눈높이를 한 번도 스스로 안 해서 전에도 어머니께서 째 버렸다. 그리고 어머니께서 학원도 가지 말라고 하셨다. 그래서 오늘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눈높이 국어를 하기 싫다. 그런데 왜 자꾸 해야 한다고 그랠까? 그리고 책을 째는 것은 나쁘다. 돈을 주고 샀는데 돈만 없앴다. 그리고 돈 주고 사는데 왜 째는지 공부하라고 쨌다. 그래도 책을 째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5시 55분→6시 49분)
재미있게 읽어 보세요
1장 운동장으로 나가자 전유리나 최성욱 김동현 정병화 일 돕기 (이하생략) 2장 선생님도 함께 써요 개미처럼 부지런히 반장, 부반장 뽑기 벌 봉숭아 찐만두 청소 방아깨비 들풀 놀이
3장 콩도 볶아 먹고 숙제도 하고 재미있는 숙제 추운 날 읽기 시험 옛날 이야기 이상한 이야기 (이하생략)
이 책을 읽는 어린이에게
선생님과 부모님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