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 어린이 갯살림 시리즈〉 여섯 번째 그림책인 《갈치 사이소》는 부산에 있는 자갈치 시장 이야기를 담았어요. 자갈치 시장에서 30년 넘게 장사하고 계신 남이 할머니를 따라 가며 새벽 시장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이 책에는 사람이 많이 나옵니다. 다들 잠들어 있는 새벽에 부지런히 일하는 상인들 모습이 그대로 그려집니다. 또 새벽에 열리는 경매 시장, 생선을 싣고 들어오는 배, 시장에서 생선을 나르는 사람들, 또 장보러 나온 엄마도 모두 그림에 담았습니다.
어시장 이야기니까 생선도 아주 많아요. 펄떡펄떡 살아 있는 생선, 꼬들꼬들 말린 생선, 또 조개랑 오징어도 푸짐하게 들어있어요. 이 책의 주인공은 시장 사람과 풍성한 생선, 그리고 장 보러가는 엄마와 어린이들입니다. 《갈치 사이소》는 생선 장수 할머니와 어시장 이야기를 통해서 생선이 시장에 오기까지 과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줍니다.
어시장을 다룬, 본격 다큐멘터리 그림책
자갈치 시장에 가면 남이 할머니가 있습니다. 이 책은 실제 인물을 따라서 경험한 내용을 그대로 그림책으로 만들었습니다. 지금 자갈치 시장에서 노점을 하고 있는 박남엽 할머니가 주인공입니다. 실제로 화가와 편집자가 박남엽 할머니네 집에 가서 하룻밤을 같이 자고 다음날 할머니를 따라 새벽에 일어나, 할머니와 함께 장사 준비를 같이 했습니다. 할머니가 깜깜한 새벽에 나와 시장에서 입는 옷으로 갈아입고, 경매장에서 물고기를 사고, 부두로 가서 배에서 내리는 오징어를 사고, 해가 뜰 때 할머니 가게로 돌아와 가게를 차리고 손님을 부르는 때까지 계속 함께 했습니다. 상인들이 쓰는 부산 사투리도 살려 썼고 시장에 있는 생선 이름도 거의 그대로 살렸습니다. 또한 여기에 실린 생선들은 비늘 방향이나 크기, 모양들을 전문가에게 꼼꼼히 감수 받았습니다.
자갈치 시장에는 물도 많고, 물고기도 많고, 사람도 많습니다. 어시장은 활기찬 목소리, 고기들이 펄떡거리며 물튀기는 소리, 흥정하는 소리, 목이 터져라 손님을 부르고, 싸울 듯이 값을 흥정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시장은 늘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입니다. 이 책에서는 시장 사람들이 모두 주인공입니다. 새벽부터 밥을 배달하러 다니는 아주머니한테 “힘드시죠?” 하고 물었더니 “안 힘들어요. 자갈치 시장에 나오면 살맛이 나는대요.” 하셨습니다.
화가에게 욕을 하던 할머니가 주인공이 된 이야기
화가 에게 욕을 하던 할머니가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자갈치 시장에 처음 취재갔을 때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할머니는 남들보다 덩치도 크고 목소리도 커서 상인들 사이에서 돋보였습니다. 할머니 앞에서 사진 찍고 이것저것 물어보느라 가게 앞에 오래 앉아있으니까 할머니가 화가에게 욕을 하며 쫓아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취재를 갔더니 “다음에 올 때 여관 잡지 말고 전화해라. 하룻밤 재워주고 부산 갈치 지짐 맛나게 해줄라니까”하며 살갑게 대해주셨습니다. 나중에 듣고 보니 할머니 딸이 그림 공부를 했답니다. 취재하고 스케치 하는 화가 모습이 딸같이 보여 집에서 재워줄 생각이 드셨대요.
할머니 집은 시장에서 걸어서 5분쯤 걸렸습니다. 저녁밥으로 갈치 지짐을 해주셔서 맛있게 먹고 저녁 7시부터 잠을 잤습니다. 새벽 3시에는 일어나야 했으니까요. 새벽밥을 차려주셔서 새벽에 밥을 먹고 같이 장사를 나갔습니다. 할머니가 통로 노점에서는 가장 먼저 나오셨습니다.
시장 이야기로 시작하는, 아이들 경제 교육
이 책에서는 부지런한 상인들 모습과 어시장의 생생한 물고기들을 풍성하게 보여줍니다. 도매 시장은 대부분 다들 잠자는 밤과 새벽 시간에 이루어집니다. 어린이들이 곤히 잠자는 때가 시장이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는 시간이지요. 밤에 열심히 일하는 상인들 덕에 가까운 시장에서 편한 시간에 농수산물을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새벽 시장은 경매 시간부터 가장 활기를 띱니다. 밤새 경매된 수산물은 경매가 끝난 즉시 여러 도시로 팔려 나갑니다. 경매할 때는 말을 하지 않고 손가락으로 숫자를 표시합니다. 가장 높은 가격을 표시한 사람에게 판매됩니다.(최근에는 전자 방식으로 경매를 하는 곳도 있다고 합니다.) 경매를 거친 물건은 도매 상인이 사서 다른 도시로 싣고 가거나 자갈치 시장 상인이 사서 가게로 옮겨 놓고 팝니다. 어시장은 대부분 도매로 팔려 나가기 때문에 경매가 끝나는 이른 새벽부터 상인들과 소형 트럭, 수레들로 붐빕니다.
자갈치 새벽 시장은 상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도매 시장이고, 아침부터 찬거리를 사러 나온 사람들을 상대로 하는 장사는 소매 시장입니다. 새벽 시장은 경매장에서 시작해서 아침이 되면, 점점 좌판을 펼치며 아주머니(아지매)들이 장사하는 소매 시장이 넓게 만들어집니다. 도매와 소매는 누구에게 파느냐에 따라 구분됩니다. 예를 들면 자갈치 시장 상인이 가정 주부에게 갈치를 팔았다면 소매이고, 생선 가게 주인에게 팔았다면 그것은 도매가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같은 상인이 같은 갈치를 팔았다 하더라도 소매가 될 수도 있고, 도매가 될 수도 있습니다.
시장은 어느 마을에나 다 있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한 번 가 보면, 시장이 새롭게 보일 겁니다. 어린이에게 용돈을 모아 저축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도 좋지만,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을 만나게 해주는 것이 아이에게 평생 기억에 남는 더 좋은 경제 교육이 될 것입니다.
살아 움직이는 동판화의 섬세한 선
그림을 그린 이영숙 씨는 1979년 부산에서 태어나 홍익 대학교에서 판화를 공부했어요. 《갈치 사이소》를 그리기로 한 다음, 고향집에 내려갈 때마다 자갈치 시장을 꼭 들렀습니다. 2년 넘는 시간 동안 자갈치 시장 취재만 서른 번을 넘게 했습니다.
이 그림은 동판화로 검은 선을 찍고 그 위에 수채 물감으로 색칠을 한, 판화 그림입니다. 살아 움직이는 판화의 선을 써서 활기차고 와글와글한 시장을 그림으로 담아냈어요. 시장을 여러 번 취재하고 나서, 새벽 어시장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 주기 위해 동판화의 선으로 그려내겠다고 계획했습니다.
우직하고 강직한 목판화에 견주어 보면, 동판화는 가늘고 섬세한 선이 자유롭게 표현됩니다. 자유로운 선을 보고 있자면 시장의 활발한 기운이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