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들려주는 우리 산의 참나무와 도토리 이야기
산에서 나는 쌀, 도토리
동네 뒷산에 가든, 첩첩산중 깊은 산에 가든, 우리 나라 산이라면 어디에서든 도토리를 볼 수 있습니다. 도토리가 열리는 나무를 참나무라고 하지요. 참나무는 우리 나라 어디서나 잘 자라는 나무입니다. 이 참나무 덕분에 산에는 온갖 생명들이 살아갑니다. 참나무에 기대어서 살아가는 것이지요.
갉작갉작 도토리를 파 먹거나, 참나무에서 나는 나뭇진을 먹고 사는 벌레도 있고, 작은 새나 짐승들은 열심히 도토리를 주워 먹으면서 살아갑니다. 한겨울 추위도 도토리를 주워 먹으면서 이겨내지요. 참나무 줄기에 집을 짓는 새도 있고, 커다랗고 오래된 참나무 둥치 속에서는 곰이 겨울잠을 자기도 합니다. 참나무 가랑잎이 쌓여 있는 산은 땅심도 좋아서 온갖 풀과 나무와 버섯이 자라납니다. 도무지 참나무가 없는 산은 무엇이 살 수 있을까 상상이 되질 않습니다.
사람도 참나무에 기대어 살아가는 생명 가운데 하나입니다. 오래 전에는 식량이 모자랄 때 먹으려고, 서울 궁궐 안에도 참나무를 심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니 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지금 우리가 먹는 쌀밥처럼 도토리를 먹고 살았어요. 요즘은 도토리로 묵이나 쑤어 먹는 정도이지만요.
참 나무는 쓰임새가 무척 많습니다. 집을 지을 때도, 추운 겨울에 불을 때는 것도, 논에 거름을 하거나, 약으로 쓰거나, 벌을 치거나, 숯을 하거나, 버섯을 기르거나…. 이렇게 참나무는 우리 살림살이에서도 어디 쓰이지 않는 데가 없습니다.
강원도 산골에 살고 계시는 이옥남 할머니가 들려준 이야기
이 옥남 할머니는 평생 참나무와 함께 살았어요. 봄에는 참나무 잎을 따서 거름을 하고, 여름이 지날 무렵이면 참나무에 돋는 버섯도 하러 가지요. 가을에는 내내 도토리를 주우러 다니고, 겨울이면 참나무로 불을 때서 도토리 밥을 지어 먹기도 하고요.
“도토리로 밥을 하려면 말린 도토리를 절구나 방아에 찧어서 껍질을 까.
그걸 쌀이라고 했어. 도토리 쌀을 푹푹 삶아서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우려내야 해.
처음에는 시커먼 물이 나오는데, 열두 번은 갈아 줘야 떫은 맛이 빠져.
그러면 콩 넣고 팥 넣어서 쪄 먹지. 도토리 밥을 한 번 끓여 놓으면 며칠씩 먹었어.
겨우내 밥 대신 먹었지. 도토리 밥 먹고 나면 이가 시커매져.
날마다 도토리만 먹으니까 똥이 굳어서 안 나오기도 했어.”
할 머니가 들려주는 도토리 이야기는 끝이 없습니다. 몇 날 며칠을 도토리 이야기만 하시고도, 그 다음에 찾아 가서 들으면 또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셨어요. 참나무에서 벌레가 툭 떨어진 이야기, 곰이 참나무 가지 꺾어 먹는 이야기, 멧돼지가 도토리 씹어 뱉은 이야기, 쓰러진 참나무 찾아서 버섯 따는 이야기.
“쥐, 오소리, 멧돼지 다 먹는데, 까 먹는 데는 다람쥐가 아주 선수야.
양쪽 볼에 잔뜩 물고서는 나불락거리면서 까 먹고 껍질은 내버려. 곰도 잘 먹어.
곰은 덜 여물어서 새파랄 때 가지째 꺾어서 먹는대.
가을에 참나무 이파리가 군데군데 뻘겋게 죽어 있는 건 곰이 가지를 꺾어서 그런 거래.
멧돼지는 땅에 코를 박고 싹 주워 먹는데,
멧돼지가 먹은 자리는 꼭 밭을 갈아엎은 것처럼 흙이 파여 있어.“
할머니가 들려주는 도토리 이야기를 듣고 있으려니까 ‘산에서 살려면 정말 참나무 없이는 못 살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요. 할머니가 말씀 끝에 한마디 덧붙이십니다.
“쓸모가 많아서 참 좋은 나무라고 참나무인가 봐.”
일년도 넘게 참나무를 찾아 다녔습니다
할 머니 이야기를 듣고 책을 펴낼 생각을 하면서 참나무를 찾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동네 뒷산에도 가고, 서울에 있는 북한산에도 가고, 조금 더 보려고 경기도 양평에도 가고, 이옥남 할머니가 살고 계시는 강원도 산골에도 들락날락 했어요. 다람쥐가 겨우내 먹으려고 도토리 떨어진 자리마다 폴짝폴짝 뛰어 다니듯이, 일년도 넘게 참나무 본다고 여기저기 들락날락 쉬지 않고 다녔지요.
도 토리는 한 가지만 있는 게 아니에요. 도토리도 길쭉길쭉한 도토리, 둥글둥글한 도토리, 깍정이가 오돌도돌한 도토리, 털처럼 부스스한 도토리. 이렇게 여러 가지인 것처럼 참나무도 여러 가지이지요. 신갈나무는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지만, 갈참나무는 신갈나무처럼 흔하지 않아서, 여러 가지 참나무를 다 보여주려니 이곳 저곳 찾아다녀야 했지요.
다람쥐를 따라가다 보면 참나무와 도토리의 한살이가 보여요
이 옥남 할머니가 살고 있는 강원도 산골을 배경으로 그려진 이 책은 참나무에서 새순이 돋는 봄부터 시작합니다. 큰 참나무에는 새순이 돋고, 도토리에서는 싹이 나고 다람쥐도 겨울잠에서 깨어나 폴짝폴짝 뛰어다닙니다. 책을 넘기다 보면 여러 가지 참나무마다 꽃이 피고 도토리가 열리고 자라나는 일년 모습을 고스란히 살펴볼 수 있지요.
한여름에 참나무에 몰려드는 벌레나, 가을이 되어서 도토리를 주워 먹는 새와 짐승. 그리고 도토리를 먹고 난 흔적이나 똥이며, 참나무에 돋는 버섯도 볼 수 있습니다. 겨울이 가까이 올 무렵 겨울 식량으로 도토리를 물어 나르는 다람쥐를 보면서 책은 마무리 됩니다. 이런 내용을 책 본문 속에 꼼꼼하고 세밀하게 그리고, 따로 설명을 달아 놓았습니다.
본문 글은 이옥남 할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를 바탕으로 아이에게 들려주듯이 썼고, 그림은 우리 나라 참나무 산의 느낌을 잘 드러낼 수 있도록 따뜻한 수채화로 그렸습니다. 장면마다 나오는 다람쥐를 따라가다 보면 참나무와 도토리의 여러 가지 모습을 하나씩 짚어볼 수 있어요.
본문이 끝난 뒤에는 따로 도토리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할머니가 들려준 도토리 이야기를 보면 참나무와 도토리가 얼마나 고맙고 소중한 것인지 쉽게 느낄 수 있어요. 책을 보고 난 아이에게 이 이야기를 읽어주면 마치 할머니가 직접 말해주는 도토리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도토리 이야기에 푹 빠질 수 있겠지요.
그림 장순일
장 순일 선생님은 1963년에 경상 북도 예천에서 태어났습니다. 덕성 여자 대학교에서 서양화를 공부했어요. 어린이 산살림 그림책 《고사리야 어디 있냐?》를 그리고 《무슨 풀이야?》《무슨 꽃이야?》에 세밀화를 그렸습니다. 이 책의 그림은 수채 물감으로 그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