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음과 없음에서 함과 됨까지

철학을 다시 쓴다

양장 | 152*224mm mm | 416 쪽 | ISBN 9788984287808

좋은 세상을 앞당기기 위한 윤구병의 철학 강의 .

이 책은 있을 것이 있고, 없을 것이 없는 ‘좋은 세상’을 앞당기기 위한 농부철학자 윤구병의 철학 강의를 담았습니다. 학생들과 주고받는 대화체로 진행되는 이 책에서는, ‘있음과 없음’, ‘함과 됨’이라는 가장 근본적인 철학 문제를 두고 끝까지 왜냐고 따지고 묻는 치밀한 논증이 펼쳐집니다. ‘있음과 없음’은 무엇이고 ‘함과 됨’은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 그리고 이 문제가 좋은 세상 만들기와 어떻게 잇닿을 수 있는지를, 우리 현실과 맞닿는 철학 이론으로 풀어냈습니다. 칠십 평생을 실천하는 철학자로 살아온 윤구병 선생의 삶과 세계에 대한 깊은 통찰과 함께, 인류의 미래에 대한 전망까지 두루 만날 수 있는 책입니다. 

어른

문화관광부 선정 교양도서(2013)

펴낸날 2013-02-20 | 1판 | 글 윤구병 |

25,000원

22,500원 (10% ↓)

22,500원 (10% ↓)

“철학은 뿌리를 찾는 학문이고 까닭을 캐는 학문입니다” 

농부철학자 윤구병의 좋은 세상을 앞당기기 위한 철학 강의

 

과거는 추억과 반성의 영역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미 그렇게 되어 어쩔 수 없는 그런 것이 아니고 스스로 움직여서 현재와 미래의 모습까지도 바꾸어 낼 힘을 지닌 살아 생동하는 그 무엇입니다. 그러니 과거가 이미 없는 것이라느니, 우리의 의식, 우리의 기억, 우리의 영혼 속에 간직되어 있어서 우리 머리나 몸에 간직된 정보를 통해서만 현재나 미래에 힘을 미칠 수 있다고는 말하지 맙시다. 과거는 ‘있음과 없음’이라고 실체화되어 고정된 그 어느 것이 아니라 그 나름으로 현실을 구성하는 ‘함과 됨’의 영역입니다.  

 

  -윤구병

 

 

❙ 좋은 세상을 앞당기기 위한 윤구병의 철학 강의     

 

“우리 사회가 좋은 사회가 되기 위해서 있을 것이 무엇이고, 없을 것이 무엇이냐, 

그것이 실제로 있느냐, 없느냐, 있으면 얼마나 있고, 없으면 얼마나 없느냐를 

꼼꼼히 살피지 않고 보수주의가 좋으니 진보주의가 좋으니, 수구니, 개량이니, 혁신이니, 

혁명이니 하고 말로만 내세우는 것은 다 부질없는 짓이지요.” (본문 가운데)

 

이 책은 있을 것이 있고, 없을 것이 없는 ‘좋은 세상’을 앞당기기 위한 농부철학자 윤구병의 철학 강의를 담았습니다. 학생들과 주고받는 대화체로 진행되는 이 책에서는, ‘있음과 없음’, ‘함과 됨’이라는 가장 근본적인 철학 문제를 두고 끝까지 왜냐고 따지고 묻는 치밀한 논증이 펼쳐집니다. ‘있음과 없음’은 무엇이고 ‘함과 됨’은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 그리고 이 문제가 좋은 세상 만들기와 어떻게 잇닿을 수 있는지를, 우리 현실과 맞닿는 철학 이론으로 풀어냈습니다. 칠십 평생을 실천하는 철학자로 살아온 윤구병 선생의 삶과 세계에 대한 깊은 통찰과 함께, 인류의 미래에 대한 전망까지 두루 만날 수 있는 책입니다. 

 

 

❙ 서양 존재론의 전통에 정면으로 도전하기

 

고대 그리스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서양 존재론 전통의 맥을 짚어 가면서 ‘존재’와 ‘운동’의 문제를 중심에서부터 파고든 내용을 주요하게 담았습니다. 파르메니데스, 제논,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플로티노스를 비롯한 여러 서양 고대 철학자들이 펼친 그리스철학의 핵심 개념들도 염주 알 꿰듯이 하나로 엮어 냈습니다. 특히 플로티노스의 이론을 징검다리 삼아, 서양 고대 철학계에서 신줏단지처럼 여기는 플라톤의 이데아 이론에 문제가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이와 함께 데미우르고스, 이데아, 아페이론(무규정적인 것), 질료, 형상 같은 철학의 기본 개념들에 대한 치밀한 논증은 기존에 만나기 어려웠던 새로운 존재론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또 고대 원자론자들의 이론을 포함하여 헤겔, 베르그송, 마르크스 같은 근대 철학자들의 학설이나 현대 실증과학의 이론들도 ‘있음과 없음’, ‘함과 됨’의 관점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서양 존재론의 근본 문제를 낱낱이 분석하고 논증하는 과정을 거쳐서, 서양 철학사에서 그동안 비껴갔던(외면했던), ‘없는 것이 있다’는 이론을 밝혀냈습니다. 서양 존재론의 전통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그 속에 감춰진 맹점을 집요할 정도로 끈질기게 파헤쳐서 이른바 ‘윤구병식 존재론’을 새롭게 정립했습니다.

 

 

❙ 철학의 본질을 제대로 맛볼 수 있는 ‘철학 입문서’

 

 철학은 뿌리를 찾고 까닭을 캐는 학문입니다. 그러자면 가장 큰 하나에서부터 가장 작은 하나까지, 모든 것을 빠짐없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책 전체에서 끈질기게 펼쳐지는 논증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끝까지 왜냐고 따지고 물어서, 그 뿌리를 찾고 까닭을 캐는 학문’이라는 철학의 본질을 제대로 맛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책은 1993년부터 1997년까지 철학 전문지 <시대와 철학>에 ‘있음과 없음’을 주제로 연재한 글과, 2008년에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함과 됨’을 주제로 강의한 내용을 함께 엮은 것입니다. 강의실 풍경을 그대로 옮겨 놓은 글을 통해, 바로 눈앞에서 강의를 듣듯이 철학의 핵심 개념을 쉽게 따라가면서 익힐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희랍어, 라틴어 같은 낱말의 어원을 하나하나 풀이하면서 철학 개념을 설명하고 있으며, 책 뒤쪽에는 본문에 나오는 학자들이 어떤 이론을 펼쳤는지 설명하는 글도 담았습니다. 철학을 처음 시작하는 분들에게 길잡이가 되어 줄 수 있는 책입니다.

 

 

❙ ‘있음과 없음’의 존재론에서 ‘함과 됨’의 실천론까지

 

 이 책 2부에서는 ‘있음’과 ‘없음’을 둘러싼 존재론을 중심되게 다루고 있습니다. 있는 것은 무엇이고 없는 것은 무엇인지, 없는 것도 정말 없는 것인지, 우리가 무엇을 인식할 수 있으며 또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합니다. 또한 ‘있다, 없다’ ‘이다, 아니다’ ‘같다, 다르다’ ‘하나, 여럿’의 개념들도 낱낱이 분석하여 현상계의 법칙과 의식의 법칙을 함께 풀어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있는 것’이 ‘없는 것’과 더불어 있기 때문에 현상세계는 모순이 가득하고, 이 모순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와 운동이 생겨난다는 ‘운동의 생성원리’를 이끌어 냈습니다. 

‘있음과 없음’이라는 존재론 문제는, ‘현대와 도시’라는 시공간 개념과 연계되면서 ‘함과 됨’이라는 실천론으로 이어집니다. 생명의 시간이 인공의 시간으로 바뀐 도시사회에서, 인간 정신의 산물인 여러 법칙들과 연관된 문제들을 모두 ‘함과 됨’이라는 철학 개념으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글쓴이는 운동의 서로 다른 두 가지 형태인 ‘함’과 ‘됨’은, 온갖 모순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묻고 실천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있을 것이 없고 없을 것이 있는 ‘나쁜’ 세상을, 모든 생명체가 더불어 잘 살아갈 수 있는, 있을 것이 있고 없을 것이 없는 ‘좋은’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스스로 주체성을 갖고 반드시 ‘함과 됨’을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함과 됨’을 다룬 내용 속에서 ‘철학’이 세상을 해석하는 데만 그치지 않고 세상을 올바르게 바꾸는 몫까지 함께 해야 한다는 윤구병 선생의 근본 사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 신화와 공동체 역사에 대한 독특한 재해석 

 

‘있음과 없음’, ‘함과 됨’이라는 철학의 근본 문제를 다루기에 앞서, 책 1부에서는 인류 역사에서 문자와 지식이 생겨나기 전에 벌어졌던 여러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펼쳐집니다. 지구의 역사에서 ‘생명의 시간’이 ‘자연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으로 나뉘게 된 과정을, 신화와 공동체 역사를 통해 자세하게 설명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기독교 창세기와 단군신화를 윤구병 선생만의 독특한 이론으로 재해석했으며, 그 내용을 바탕으로 최초의 공동체, 농경공동체, 유목공동체, 도시사회의 형성 과정을 이야기합니다. 이와 함께 ‘시간적인 경험의 축적’이 지혜의 함수가 된 농경사회와 ‘공간적인 경험의 확장’이 지혜의 함수가 된 유목사회의 변천사, 그리고 고대 해안 도시사회에서 현대 도시사회에 이르기까지 의사소통 수단의 발달사에 대한 흥미진진한 내용들도 두루 만날 수 있습니다.

 

 

❙ 강단 사투리 대신 쉬운 ‘우리 말’로 철학하기

 

강단에서 흔히 쓰는 ‘존재(存在)’나 ‘무(無)’ 같은 말 대신, ‘있음’과 ‘없음’이라는 우리 말로 서양 존재론을 새롭게 해석했습니다. 힘 있는 사람들이 힘센 나라에서 들여온 어려운 말을 쓰지 않고, ‘좋음과 나쁨’ ‘있음과 없음’ ‘함과 됨’처럼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우리 말로 철학 이론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는 1976년 <뿌리깊은나무> 초대 편집장 시절부터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활동에 이르기까지, 40년 가까이 우리 말을 바로 되살리는 일을 실천해 온 윤구병 선생의 신념이 이루어 낸 결실입니다. 그런 까닭에 다소 어려운 철학 개념들을 다루고 있음에도 쉽게 읽힐 수 있는 책입니다. 더불어 서양 철학 이론에 기대지 않고, 우리 땅에서 우리 말과 생각으로 철학할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 주는 책이기도 합니다.

 

 

글쓴이 | 윤구병 尹九炳

 

1943년에 전라남도 함평에서 태어났습니다. 공부는 제법 했으나 말썽도 많이 부리는 학생이었고, 고등학교 2학년 때는 무전여행을 떠났다가 학교에서 쫓겨나기도 했습니다. 서울대학교 철학과와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한 뒤에 <뿌리깊은나무> 초대 편집장을 지냈고, 1981년에 충북대학교 철학 교수가 되었습니다. 교수 생활을 하면서 어린이를 위한 책 <어린이 마을> <달팽이 과학동화> <올챙이 그림책> 들을 기획했습니다. 1989년 ‘한국철학사상연구회’가 결성되었을 때 초대 공동대표를 맡았고, 그 뒤로 오랫동안 단독 대표를 맡았습니다. 1996년부터 철학 교수를 그만두고 농사꾼으로 살면서 ‘변산공동체학교’를 열어 아이들과 함께 지냈습니다. 펴낸 책으로 《실험 학교 이야기》《꼭 같은 것보다 다 다른 것이 더 좋아》《잡초는 없다》《변산공동체학교-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모래알의 사랑》《가난하지만 행복하게》《꿈이 있는 공동체 학교》《자연의 밥상에 둘러앉다》《흙을 밟으며 살다》 들이 있습니다. 기획부터 출간까지 7년 넘게 공을 들인, 남녘과 북녘 어린이가 함께 보는 《보리 국어사전》을 기획하고 감수했으며, 어린이 그림책 《심심해서 그랬어》《꼬물꼬물 일과 놀이 사전》《당산 할매와 나》《울보 바보 이야기》《모르는 게 더 많아》 들도 펴냈습니다.

 

윤구병이 쓴 논문

 

‘인위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에피쿠로스의 자연 철학에 대한 견해’(1980) 

‘아닌 게 아니라 없는 것이 없다-파르메니데스의 존재 개념의 분석’(1980) 

‘제논의 여럿(多)에 관한 분석’(1982) 

‘헤라클레이토스의 로고스에 관한 한 견해’(1983) 

‘엠페도클레스의 우주론에 관한 시론’(1984) 

‘형상(形相)과 의미(意味)’(1986) 

‘민주교육과 이념교육’(1987) 

‘풍경 사진을 통해서 본 베르크손 철학-창조적 진화를 중심으로’(1995) 

‘박홍규 교수의 삶과 철학’(1995)   

☞책 뒤쪽(382~393쪽)에 나오는 ‘윤구병이 걸어온 길’에서, 올해로 일흔한 살을 

  맞이한 윤구병 선생의 일대기를 자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정보 공유를 위한 카피레프트(copyleft)를 실천합니다  

 

카피레프트는 저작권(카피라이트, copyright)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창작자가 자신의 창작물을 자발적으로 공유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그 창작물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운동입니다. 정보 공유를 통해, 지식과 정보가 소수에게 독점되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을 수 있게 하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 정신을 실천하고자 하는, 글쓴이와 보리출판사의 뜻에 따라 이 책은 카피레프트(copyleft)를 권장하고자 합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CCL: Creative Commons license) 규정에 따라, 상업 목적이 아닌 한 출처를 밝히고 내용을 그대로 쓰면, 이 책에 대하여 누구나 자유롭게 복제와 전송을 할 수 있습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CCL) 표시  

 

 

추천하는 글

 

 “저자는 ‘파르메니데스 극복’이라는 그리스철학의 큰 문제에서 실마리를 잡아 헤겔, 마르크스, 베르그송 같은 현대 철학자들에 이르기까지 서구 존재론사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논의 말미에 다시 구체적 삶의 맥락으로 돌아와 ‘좋은 세상’에 대한 실천의 가닥을 잡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유 방식은 곧 소은 박홍규 선생의 가르침이기도 하며, 이 점에서 이 글은 ‘소은철학’이라는 20세기 한국 철학의 위대한 수확이 ‘윤구병 철학’이라는 21세기의 새로운 수확으로 이어지는 고리를 보여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철학적 사유를 매개로 좋은 정치를 꿈꾸는 모든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면 좋겠습니다.”

이정우(경희사이버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삶과 세계에 대한 선생님의 깊은 통찰을 접하면서 ‘역시!’라는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세세하게는 내용상 논쟁적인 부분이 적지 않습니다만, 그것은 마치 큰 마차가 힘차게 노지를 달려가면서 흩날리는 먼지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오히려 큰 구도에서 거칠 것 없이 펼쳐지는 선생님의 대가다운 면모와 자유분방하고도 힘찬 필치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어 참 좋았습니다. 한국현대철학사에서 사상사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평가할 만한 책이 그리 많지 않은데 이번 책이 그 소중한 자리를 하나 더 채워 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정호(한국방송통신대학교 철학과 교수)

 

 

본문 들여다보기

 

 크기 안에 있음과 없음이 함께 있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보는 이 교탁에 모순이 있다는 말이고, 이 말을 넓히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모순이 있다는 말이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생각은 이 세상에 있는 모순을 반영해서 있는 것도 파악하고 없는 것도 파악하여 ‘있다’, ‘없다’는 말을 밥 먹듯이 할 수 있다는 말이 됩니다. (124~125쪽)

 

 세상에! 철학 선생이라는 자가, 그것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신줏단지처럼 모시고 다니면서 그것으로 밥을 벌어먹는 서양 고대 철학 선생이라는 자가 이렇게 제 쪽박 깨는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으니, 앞으로 하는 이야기가 씨알이 안 먹히면 그야말로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어 마땅한 노릇이겠지요. (144쪽)

 

 어거지로 플라톤을 두둔해 주려고 하다가는 저마저 거덜나기 십상인 판국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미련이 없지는 않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본을 받아서 플라톤으로부터 등을 돌리기로 했습니다. (172쪽)

 

 플라톤은, 앞에서 이야기했다시피 우리가 무엇, 어떤 것이라고 이름 지어 부를 수 있는 모든 것은 하나도 빠짐없이 있는 것이고, 그것이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다시 말해서 공간 속에서 반복되고, 시간 속에서 지속되어, 하나로 우리에게 드러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플라톤의 이데아 세계는 없는 것이 없는, 우리가 감각을 통해서나 이성을 통해서나 파악할 수 있는 사물들의 모든 성질들이 하나도 뒤엉켜 있지 않고, 저마다 분명한 한계를 드러낸 채 따로따로 떨어져 다 갖추어져 있는 세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점에서 플라톤은 자기가 파르메니데스의 하나로 있는, 그래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사실들을 모두 헛것으로 돌려 버리는, 있는 것이라는 괴물로부터 벗어났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플라톤은 파르메니데스의 품 안에서 벗어나는 순간 자기의 이론이 모순을 끌어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몰랐던 듯합니다. (175쪽)

 

 있다, 없다는 말이 우리 사고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낱말이라는 사실은 철학자들이 나타나기에 훨씬 더 앞서서 우리 인류가 가장 큰 하나인 있는 것에서부터 가장 작은 하나인 없는 것에 맞닿아 있는 것에 이르기까지 머릿속에 담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좋은 본보기입니다. 철학하는 사람의 과제는 바로 이 가장 큰 하나인 있는 것과 가장 작은 하나인 그 무엇을 양 극단에 두고 이 두 끝, 한계 사이에 우주 전체의 삼라만상이 어떻게 배열되는지, 차례로 하나하나를 겹쳐서 우주의 전체 구조와 그 구조에 따르는 기능을 밝혀내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제가 하려는 일도 이 작업의 한 고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185~186쪽)

 

 여러 학생들은 그동안 학문 동네 사투리가 귀에 익어 내가 일상용어로 지껄이는 말을 주의 깊게 귀담아듣지 않으려고 할지 모릅니다. 이제까지 한 이야기도 학문 사투리를 섞어 ‘오류 판단의 존재론적 근거’가 어쩌고 ‘실천상 오류의 존재론적 분석’이 저쩌고 하고 떠들어 댔다면 여러분 중에는 ‘와, 굉장하다. 이런 존재론 강의는 전무후무한 명강의라 할 만하다’고 감탄할 사람이 있을 줄 압니다. 

 그러나 마을 공동체의 자연스러운 삶 속에서 빚어진 사투리와 학문 사투리는 다릅니다. 그냥 사투리는 진솔하지만 학문 사투리에는 뻐김과 잘난 체함이 깃들어 있어요. 머리만 굴려서 먹고 사는 사람, 이른바 정신 노동자가 손발을 부지런히 놀려서 먹고 사는 사람, 이른바 육체 노동자를 속이고 겁주어서 그 사람들 몫을 가로채려고 해 온 ‘정보 소통의 인위적 난관 조성’(어때요? 그럴듯해 보이지요?)의 음모가 학문 사투리에서는 물씬 풍깁니다. 그러니까 정신 노동자라는 특권 계급이 자기들끼리 정보를 독점하려고 일부러 어려운 말을 써서 보통 사람들을 따돌리는 야바위 노름의 속임수가 학문 용어에는 많이 섞여 있다는 뜻입니다. 학문하는 사람들이 이 버릇을 고치지 못하면 끝내는 보통 사람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우스갯거리가 될 날이 멀지 않다고 나는 굳게 믿습니다. (218쪽)

 

우리가 나날의 삶에서, 또 그 삶을 반영하는 감각이나 사유 속에서 없는 것을 몰아내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없는 것은 여전히 우리의 삶과 생각의 빈틈을 비집고 들어옵니다. 배가 고픈데 먹을 것이 없습니다. 추운데 난로에 온기가 없습니다. 있는 것 하나밖에 없으면 생각도 없습니다. 구체적인 생활에서나 감각에서나 생각에서나 어디에서나 드러나는 이 없음의 근원은 무엇입니까? 비어 있음이라고요? 결핍이라고요? 이미 있었던 것의 사라짐이라고요? …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리 천하장사라 해도 이 세상에는 감각의 세계와 사유의 세계로부터 이 없음을 몰아낼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니 차라리 얼버무리지 말고 솔직히 인정합시다. (252쪽)

 

  제가 이렇듯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간단히 줄이고 플로티노스의 이론을 저 나름으로 해석하여 장황하게 늘어놓는 까닭은 다른 데 있는 게 아닙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모자 속에 감추어 놓고 끝까지 보여 주려 들지 않았던 것의 실체가 플로티노스의 이론에서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253쪽)

 

 ‘없는 것이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문장이 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은 ‘없는 것이 있는 것이다’라는 문장을 나란히 놓고 판단할 때 한층 더 강화됩니다. 만일에 이 두 문장을 놓고 볼 때 그 가운데 어느 하나는 분명히 참인데 다른 하나는 거짓임이 틀림없다는 결론을 내리기 힘들다면 사태는 더 심각해집니다. 모순율이 깨지면서 동시에 배중률도 공리로서 구실을 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이 사태는 다만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식 논리학이 설 자리를 잃는 것으로 마무리되지 않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식 논리학이 무너지면 파르메니데스가 주춧돌을 놓고 플라톤이 그 위에 기둥을 세운 그리스 존재론의 전통이 한꺼번에 와르르 주저앉을 위험이 있다는 사실이 눈에 선하지 않습니까? (254쪽~255쪽)

 

 나 윤구병은 윤구병으로서는 있는 것이지만 나 밖의 다른 모든 사람으로서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 윤구병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그물코에 얽혀 있는 관계의 산물이라는 뜻이지요. 다른 모든 것들도 마찬가지입니다. (286쪽)

 

제 마음 저 깊은 곳에서 음울하고 불길한 경고의 소리가 울려 왔습니다. 

‘너는 지금 불가능한 일을 시도하려 하고 있다. 사유와 추론이 이루어지는 의식 공간에 한 발짝만 들어서도 의식의 칼날 아래 토막 나고 산산이 저며져서 형체조차 찾을 길 없는 것을 제물로 삼아 네 이론을 정당화하려고 하고 있다니, 바로 이런 오만을 경계하여 옛날 불가에서 한 말이 있지 않더냐. 개구즉착(開口則錯). 입만 벙긋해도 틀린다. 차라리 입을 다물려무나.’ (296쪽)

 

 있음과 없음도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있는 것은 이 둘의 관계이고, 우리의 의식이 분석 최종 단계에서 이 두 항을 실체화하는데, 여기에 따르는 위험이 너무 커서 서구 존재론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 함정에서 벗어난 철학자가 아직 한 사람도 없었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겁니다. 그러니 어찌 나라고 해서 이 함정에서 쉽사리 비켜서리라고 기대할 수 있겠어요? (298~299쪽)

 

 있을 것만 있고 없을 것은 없는 사회는 그대로 온전히 지속되어야 합니다. … 있을 것이 많이 있고 없을 것이 많이 없는 사회는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지속에 더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지속이 주요 변수라면 변화는 종속변수가 됩니다.) … 그러나 있을 것이 없고 없을 것만 있는 사회는 전체가 변화해야 합니다. … 없을 것이 많이 있고, 있을 것이 많이 없는 사회는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변화에 더 힘써야 합니다.(변화가 주요 변수가 되고 지속은 종속 변수가 됩니다.) (319~320쪽) 

 

 우리가 당면한 문제는 미래가 없는 도시 문명이 우리를 이끌어 가는 대로, 그야말로 되는 대로, ‘될 대로 되라’고 살아갈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지속 가능한 미래를 확보하기 위해서 이제부터라도 떨쳐 일어서서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냐입니다. (367쪽)

 

■ 책머리에
■ 책을 읽기 전에    

 

1부 ‘좋음’과 ‘나쁨’ 

-좋음과 나쁨 
-공동체 형성 과정   
-농경공동체 지혜의 함수: 시간  
-유목공동체 지혜의 함수: 공간   
-농경공동체와 유목공동체의 비교   
-신화 해석의 중요성: 우리 사회의 지식 형성 과정
-도시의 형성 과정 
-도시사회에서 의사소통 수단의 변화 
-의사소통 수단으로 발전한 문자 

 

2부 ‘있음’과 ‘없음’

-참말과 거짓말 
-있음과 없음의 구분 
-있음과 없음의 연속성 
-왜 고상한 ‘존재’와 ‘무’가 아니고 흔해빠진 ‘있다’ ‘없다’인가? 
-있음과 없음에 연관된 악과 죄의 근원  -사람이 ‘동물’이 되는 자리와 ‘짐승’이 되는 자리 
-같으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같다? 
-있는 것만 있는 게 아니고 없는 것도 있다 
-아페이론:‘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것 

 

3부 ‘함’과 ‘됨’

-‘함’과 ‘됨’: ‘능동’과 ‘수동’의 힘 
-가치 판단이 사실 판단에 앞선다  
-‘함’과 ‘됨’의 차이: 운동의 두 가지 형태 
-‘함과 됨’: 운동의 난제 
-‘함과 됨’, ‘있음과 없음’의 연관성 
-인간의 행동 양태와 습관 
-상황에 따른 인간의 의식과 행동 변화  
-삶과 생명체 
-주체성과 자율성 

 

■ 추천하는 글 
■ 윤구병이 걸어온 길 
■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 
■ 찾아보기  

미리보기 준비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