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빠요 바빠》는 이런 책입니다
마루가 사는 산골에는 가을이 일찍 찾아옵니다. 가을은 모두를 바쁘게 만드나 봐요. 마루네 식구랑 마을 사람들이랑, 또 함께 사는 온갖 동물들까지 가을걷이와 겨울나기 준비로 한창 바쁘답니다.
한 해 동안 정성껏 기른 곡식을 다 거둬들이고 갈무리하기에는 가을날이 참 짧아요. 고추를 따서 말려야 하고, 콩도 털어야 하고, 벼도 베야 하고, 김장도 해야 하고….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식구들 저마다 바빠요. 김장하는 날엔 동네 사람들이 모두 마루네를 거든답니다. 마루도 어른들 곁에서 일손을 돕지요.
사람들만 바쁠까요? 생쥐도 부지런히 콩알을 나르고, 다람쥐도 열심히 밤을 나릅니다. 모두 겨울나기를 준비하는 거지요.
할머니가 콩알을 고르는 곁에서 마루는 스르르 잠이 들며 이야기가 끝납니다. 이제 곧 긴긴 겨울 밤이 다가올 거예요.
조용한 가운데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과 동물들 모습을 콩테와 수채 물감으로 그렸어요. 가을빛 가득한 산골 마을이 넉넉하고 푸근하게 담겨 있습니다.
" 사람에게 철을 가르치는 것은 사람이 아닙니다. 아무리 슬기로운 사람도 제 힘으로 자식들을 철들게 만들 수 없습니다. 자연이 가장 큰 스승이라는 말은 자연만이 바뀌는 생명의 시간 속에서 사람을 철들게 만들고 철나게 만들기 때문에 생겼습니다. 사람은 한 철, 또 한 철 자연과 교섭하는 가운데 밖에서 나는 봄철, 여름철, 가을철, 겨울철을 내면화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철이 나고 철이 듭니다. 교육의 큰 목표 중 하나가 아이들을 철들게 하는 것이라면 아이들이 생명의 시간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 ― 윤구병
《바빠요 바빠》를 더 자세히 들여다봅니다
강원도 삼척의 굴피집. 굴피집은 흙으로 집을 짓고 지붕을 참나무 껍데기로 한 집입니다. 집채에서도 방은 흙벽이고 부엌이나 외양간은 나무 벽입니다. 굴피집은, 부엌이며 외양간이 독립돼 있지 않고 본채에 들어 있습니다.
표지에서 할아버지가 설피(눈이 많이 내리는 산골에서 신발 밑에 대는 것)를 만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본문 첫 장면 : 비탈진 고추밭. 그 앞에 '수크렁'(풀 이름)도 보입니다.
본문 두 번째 장면 : 할아버지는 옥수수를 묶고 있고 할머니는 참깨를 털고 있습니다. 삼태기, 키, 다래끼, 채반 따위의 여러 가지 도구들을 볼 수 있습니다. 맨드라미가 피어 있네요.
본문 세 번째 장면 : 할머니가 고추를 말리고 있는데 고추가 반짝반짝 탐스럽게 널려 있습니다. 그 옆에 토종닭들이 한가로이 놀고 있습니다.
본문 네 번째 장면 : 누런 들판에 참새와 허수아비와 마루(주인공 아이)가 아주 잘 어울립니다. 비탈진 곳이라 논들도 계단식 논입니다.
본문 다섯 번째 장면 : 마루랑 다람쥐랑 청설모가 다 같이 알밤 줍느라 바빠요. 청설모는 나무 위에 있는 놈으로 다람쥐와 달리 잿빛이지요. 보랏빛 꽃의 이름은 '용담'입니다.
본 문 여섯 번째 장면 :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콩을 텁니다. 도리깨질을 하는 것이지요. 늙은 호박을 갈무리해 놓은 게 보입니다. 그 위로 소쿠리가 걸려 있습니다. 마루의 옆에 있는 그릇은 둥구미입니다. 왼쪽에는 나무로 만든 옛날식 벌통 세 개가 서 있는 것이 보입니다.
본문 일곱 번째 장면 : 벼 베느라 바쁩니다. 오른쪽 아래에 억새와 구절초가 보입니다.
본문 여덟 번째 장면 : 감 따고 감 껍질 벗기고 막대에 꿰어 너는 장면입니다. 어머니 뒤로 짚가리가 보입니다. 까치 다섯 놈이 아주 어여쁘지요.
본문 아홉 번째 장면 : 무, 배추를 뽑느라 바빠요. 무밭이 끝나는 아래쪽에는 어저기 풀이 한 포기 있습니다. 왼쪽에 묶여 있는 단은 메밀단입니다.
본문 열 번째 장면 : 김장하는 날입니다. 김장독을 묻은 위로 짚풀로 집을 만들어 주었는데 추운 고장에서는 보통들 이렇게 해서 눈이나 추위를 좀 막아 준답니다.
본문 열한 번째 장면 : 마루 아빠가 무 구덩이 파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거의 다 했습니다. 구덩이 위에 가마니를 덮고 그 위에 흙을 덮습니다. 짚으로 만든 문고리 같은 것이 삐죽 나와 있습니다. 오른쪽에 있는 것은 옥수수단.
본 문 열두 번째 장면이자 마지막 장면 : 할머니가 콩 고르고 있고 마루는 잠들어 있습니다. 할머니 뒤쪽에 있는 벽난로 같은 것의 이름은 '코쿨'(송진이나 소나무 뿌리를 넣고 태우며, 거기다가 고구마나 감자를 구워 먹습니다. 사람들은 코쿨로부터 열도 얻지만 빛도 얻는다고 합니다). 그 방에 깔린 자리는 갈대로 엮은 자리인데 갈자리 또는 갈대자리라고 합니다. 박바가지, 됫박, 다래끼, 채반, 밀짚모자 따위가 아주 정겹습니다. 방문 옆에는 조리가 매달려 있네요.
표지 안쪽의 면지도 아름답습니다. 앞 면지는 이 산골의 전경, 뒤 면지는 가을이 깊어 가고 있는 이 너와집의 밤 풍경. 조각달과 부엉이가 눈에 들어옵니다. 콩 고르는 할머니 그림자가 어스름 달빛에 비칩니다.
* 《바빠요 바빠》의 화가 이태수는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에 있는 굴피집을 꼼꼼히 취재한 뒤 그렸습니다. 《우리 순이 어디 가니(봄편)》의 들판과 논밭은 충청도, 《심심해서 그랬어(여름편)》는 경북 청송의 들이고, 《우리끼리 가자(겨울편)》의 산은 북한산과 청계산 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