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 소설의 우뚝한 봉우리 <숙향전>
―조선 여성들의 삶과 꿈이 개성을 향해 한 걸음 내딛다
숙 향은 어려서 부모에게 버림받고, 남의 집에서 자라다 모함에 걸려 그 집에서도 쫓겨나 강물에 뛰어들고, 갈밭에서 불을 만나 고생하는 등 온갖 고생을 겪으나, 한편으로 마고할미를 만나 이화정에서 수놓으며 살다 배필을 만나 마침내 부귀를 누린다. 그 숙향은 본디 하늘에서 귀양 내려온 선녀다. 숙향이는 숱한 장애와 온갖 고난 끝에 자신의 인생에서 주인이 되며, 애정을 성취하고 자신의 정체성과 고결한 품위를 되찾는다.
숙향의 고난을 보면 리얼리즘이자 여성주의요, 그 극복 의지를 보면 낭만주의요, 천상-지상의 역동적인 교차를 보면 빼어난 판타지다. 곡진한 현실 묘사, 풍성하고 화려한 인물 설정, 역동적인 구성 등 특징과 성과가 많아서 할 이야기가 많은 소설이다.
그래도 한 가지로 꼽자면, 분명 <숙향전>은 애정 소설의 우뚝한 봉우리다. 이선과 숙향이 서로를 그리는 간절한 마음, 사랑이 자신의 정체성을 완성한다는 믿음, 그리고 진실한 마음과 자기 자신의 의지로 기어이 사랑을 이루고 마는 적극적 의지를 가진 숙향에게서 독자들은 자유연애(혹은 자유와 연애)의 들뜬 분위기를 느꼈을 수 있다. 그리고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해방된 개인들의 주체성을 옹호하게 된다.
발랄하고 막힘없는 상상! 천상과 지상을 오르내리는 마법의 통로를 두다
―멋들어진 적강(謫降) 소설이자 고전 소설 최고의 판타지
주 인공 숙향의 고락이 역동적으로 펼쳐지는데 고비마다 지상에서 신선 세계로 들어갔다 나왔다 한다. 천상으로 오를 때는 선녀가 주는 물을 마시는데, 곧바로 지상 세계가 잊히고 천상 세계의 인물로 돌아간다. 그런가 하면 지상으로 내려올 때는 앵두 같은 과일을 먹는데 천상은 다 잊히고 지상의 고달픔으로 복귀한다. 천상과 지상을 오르내리는 일은 우연이 아니라 규칙으로 반복되는 일이고 독자들은 어느새 그러한 오르내림을 즐기게 된다. 지상과 천상을 연결하는 매력적인 통로를 발견한다.
이 소설을 일러 최고의 신성 소설이라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천상-지상의 교직이라는 판타지가 무한히 펼쳐지면서도 독자와 코드를 맞춰 가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계와 인간계와 신성계를 오가는 판타지―우주의 비전이 열린다
멀 리 어디선가 황새 무리가 날아와 포근한 날개로 숙향이의 온몸을 감싸 주었다. 그러자 방금까지도 추위에 떨던 몸이 소르르 녹으며 따뜻해졌다. 또 어디선가 새끼 원숭이들이 나타나 한바탕 춤을 추며 재롱을 피우다가, 불에 구운 고깃덩어리를 놓고는 올 때처럼 갑자기 사라졌다.
날짐승도 들짐승도 숙향을 돕고 응원한다. 숙향은 동물들과 교감한다. 동물을 사냥하게 해 달라는 아랫사람들의 말을 물리친다. 모든 숨탄것(생명)을 보듬는 숙향은 분명, 인간이자 신선이고, 또한 자연이다. 자연계와 인간계와 신성계를 오간다. 고전이 열어 놓는 상상력은 분명, 생태적이고 우주적이다. 근대성, 합리성은 우리의 발목만 잡지 않고 우리의 꿈, 상상력마저 묶어 놓는다. 고전의 바다에서 숨쉬노라면 우리는 다른 눈, 새로운 감수성으로 온전함(wholeness)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당대 여성들의 고난에 찬 현실을 세밀하게 읽다―여성 독자의 마음을 파고들다
신선 세계에서 지상으로 내려온 선녀. 적강 소설謫降小說이다. 하지만 숙향이 신선 세계에 속한 인물이라 해서 또 예정된 운명이라 해서 그 고난이 결코 만만하지는 않다.
(장 승상네서 쫓겨나 거리로 내몰린) 숙향이 걸으면서 제 옷차림을 살펴보니 어쩐지 빛깔 고운 연분홍 저고리와 감색 치마가 거슬렸다. ‘나도 이젠 다 자란 처녀인데 이런 색옷 차림으로 길을 가다가는 욕을 볼 수 있으리라.’ 숙향은 마을로 들어가서 제 옷을 누덕누덕 기운 헌 옷과 바꾸어 입었다. 그런 다음에는 한 눈 멀고 한 다리 저는 모양으로 길손들의 동정을 받으며 무작정 동쪽으로 걸어갔다.
결국 살길을 못 찾아 강물에 뛰어드나 천상계의 도움으로 살아난다. 그러나 다시 갈대밭에서 불을 만나 불타 죽을 뻔하다가 간신히 목숨을 건진다.
숙 향이 또 물으려 하나 어느새 노인은 보이지 않았다. 공중을 바라보며 수없이 절하고 난 숙향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몸에 실오리 하나 걸친 것이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다 큰 처녀가 벌거벗고 길을 가자니 하도 난감하여 그 자리에 펄쩍 주저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싸쥐고 울었다.
이는 당시 소설 독자였던 여성들의 현실이 그렇듯 힘겨웠다는 것을 반영한다. 그런데 왜 여자만 이렇게 고생하는가?
숙향이 다시 탄식하였다. “한가지로 죄를 짓고 저는 어찌 부귀하며 나는 이토록 고생을 겪는고? 또한 태을 있는 곳이 삼천 리라 하니 태을을 만나지 못하면 누구를 의지하며 부모를 언제나 볼꼬?”
끝내 복을 받고 영광스러이 변모하는 숙향의 일생은 분명 영웅의 일생담이라 할 수 있지만, 숙향의 고단한 삶을 그리는 데 땀과 피를 기울인 저자의 노력 덕에, 호소력은 강력하고 독자들의 감동 또한 깊다.
숙향의 벗이자 위대한 후견자, 마고할미―여성주의 소설이 보여 주는 자매애
우 리 겨레의 무의식의 원천인 신화에서 마고할미 또는 마고선녀는 창조를 맡은 이다. 또한 의약을 맡아본다. 살림 곧 생명을 주관한다. 이 마고할미가 <숙향전>에 멋지게 녹아들었다. 낭군이 되는 이선(천상의 태을진군)보다 마고선녀야말로 숙향의 진정한 짝이다. <숙향전>을 <이화정기梨花亭記>라고도 하는데, 이화정이 바로 마고할미네 집이다. 이화정, 숙향의 집이다.
여성이 세상에 나아갈 때 선배로서 지지자로서 벗으로서 또 물질적인 후견인으로서 연상의 여성이 필요하다. 마고선녀는 숙향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후견인이다.
마고선녀가 가신 뒤 숙향은 대성통곡을 한다.
“내 간 뒤 입었던 옷으로 장사를 지내고 저 청삽사리가 가서 굽으로 파는 데 묻을 것이며, 행여 어려운 일이 있거든 내 무덤에 오시오. 그러면 자연 모든 일이 순조로이 풀리리다.”
말을 마친 할미는 적삼을 벗어 주고 숙향과 이별하였다. 밖으로 나와 두어 발자국 떼자 어느새 온데간데없다.
숙향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 할미가 벗어 준 적삼을 붙안고 통곡을 하였다.
“슬 프다, 숙향의 팔자여. 어인 죄로 다섯 살에 부모를 잃고 동서로 정처 없이 떠돌다 하늘과 신령의 도움으로 낭군을 만났건만 또다시 이별이란 말인가. 마고할미한테 의지하였더니 그 혼령은 하늘로 올라가고 외로운 이 몸에는 재난이 끝나질 않으니 내 이제 어데 가서 의탁할거나. 아, 낭군을 보지도 못하고, 부모님은 또 어이 찾으리오. 슬퍼라, 내 신세여. 죽고자 하나 죽을 땅도 없구나.”
물론, 이 소설에는 마고할미 말고도 여러 여성들이 숙향과 굳고 깊은 관계를 맺는다.
신분을 넘어선 사랑, 부모에게 알리지 않는 혼인〔不告而成娶〕 모티브의 진일보
이 소설은 여러 가지 요소가 긴밀한 구성으로 종합되어 있다. 그런 다양한 요소가 있지만 분명 옛사람들은 숙향과 이선의 결합에 크게 안도했고 이 소설은 빼어난 애정 소설의 자리를 차지했다. 난리를 만나 부모에게 버림받고 거리를 헤매던 숙향이 천정배필로 애초에 천상에서 인연을 맺었던 이선과 맺어지기까지의 과정이 잘 그려졌는데 특히나 그 고난이 매우 핍진하게 그려져 있다.
그 고난은 연약한 여자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세계의 횡포나 운명에서 비롯된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현격한 신분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이선의 아버지는, 제 아들이 부모에게 알리지도 않고, 근본도 알 수 없는 여자와 혼인했다는 것에 크게 노해서 숙향을 죽이려 든다. 숙향의 치명적인 약점을 붙잡은 것이다. 신분 차이는 당시 남녀간의 애정을 가로막는 장애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이었다.
여 기서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이선의 아버지가 낙양 태수를 시켜 그 고을에 사는 숙향을 쳐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낙양 태수는 숙향의 친아비이다. 이러한 설정은 숙향을 둘러싼 세계가 숙향에게 얼마나 적대적인지를 보여 주기 위함이다.
군졸들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숙향을 붙들더니 우악스럽게 끌고 갔다. 관가에 이르니 대청 좌우에 불을 밝히고 태수가 위엄 있게 앉아 있다. 숙향은 곧 섬돌 아래 꿇리었다.
태수가 서늘한 눈길로 굽어보며 호령했다.
“너는 대체 어떤 계집이기에 이 위공 댁 공자를 꾀어 이렇듯 죽을죄를 지었느냐? 위공께서 기별하시어 너를 죽이라 하시니 너는 나를 원망치 말고 달게 형벌을 받거라!”
“잠깐 한 말씀 올리겠나이다.”
숙향이 당황하거나 겁내는 빛도 없이 말했다.
“그래, 무슨 말이냐?”
태수가 숙향을 굽어보며 나직이 물었다.
“소녀는 다섯 살에 부모를 잃고 마음씨 고운 할머니를 만나 의지하여 지내던 중, 이생이 청혼하고 할머니가 주관하여 혼인이 이루어졌을 뿐이옵나이다. 그러니 이 몸이 양반의 배필로 된 것이 결코 제 죄는 아니옵니다.”
숙향은 이렇듯 사리를 따져 가며 죄 없음을 말하나 태수는 싸늘했다.
“이 위공 어른의 명이 엄하니, 내 어찌 거역하겠느냐. 여봐라, 지체 말고 형틀에 올려 매어라.”
당당한 숙향. 근본 없는 계집이라는 비난에도 이렇게 위엄 있게 굴다니, 이것은 숙향이라는 인물에게서 당대 백성들의 각성과 주체성 회복이 힘 있게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불 고이성취不告而成娶가 고전 소설의 역사에서 어떻게 드러나고 발전해 가는가에서 <숙향전>은 큰 성취를 이룬 작품이다. 김시습의 전기소설들이나 <운영전> 같은 작품들이 신분이 초래한 모순을 비극의 형식으로 그리고 있다면, 조선 후기 국문 소설은 낭만적인 형식으로 그것의 극복 의지를 담아 내고 있다. 그래서 숙향은 춘향이의 선배이다.
영웅의 일생담을 따르다―숙향의 영광스러운 변모, 장엄한 서사시
하 늘에서 귀양 내려온 선녀 숙향이가, 이 세상에 내려와 다섯 살에 부모에게 버림받고 장 승상 댁에서 크나, 거기서 십 년을 살자 그 집 계집종의 모함으로 쫓겨난다. 표진강에서 죽고자 하나 살아나고, 다시 갈대밭에서 불을 만난다. 또다시 살아나 이화정 마고할미네에 정착한다. 이렇게 온갖 재난을 다 견디어 낸 끝에, 천생배필 낭군을 만나 혼인하나, 부모에게 알리지 않고 혼인하고 보니, 시아비가 숙향이 사는 고을 원에게 잡아들여 죽이라 한다. 명령을 받은 고을 원이 친아비건만 아비는 딸을 몰라보고 죽이려 든다. 제 아비한테 두 번이나 죽을 위협을 당하는 것이다.
영웅 소설의 틀에 넣지 않는다 해도, 분명 숙향의 일대기는 영웅의 일생담을 따르고 있다.
겨레고전문학선집을 펴내며
달나라 선녀가 내려와 숙향이 되었구나
어머니, 날 버리고 어데로 가시오
저녁 까치 울더니 애매한 일을 당하누나
강물에서 살아나니 갈밭에서 불을 만나고
숙향과 이선 꿈속에서 만나다
소아가 아니면 혼인하지 않으리오
참으로 하늘이 정한 인연이로다
마고할미 떠나니 하늘이 무너지누나
청삽사리가 숙향을 살길로 이끄니
그대와 다시 만나니 기쁨이 더하오
지난 은혜 다 갚았으나 부모는 언제 만나누
우리 숙향이가 자사 부인이 되었구나
이선, 시험에 들어 사지로 가니
신선 세상에서 세 가지 약을 얻고
하늘 세상으로 함께 돌아가누나
숙향전 원문
<숙향전>에 관하여 / 김춘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