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포는 돼지가 먹고 정자는 범이 잡아갔으면 : 조선 후기 풍자 미학의 절정
‘폭포는 금년에/ 돼지가 다 먹었건만/ 한송정은 어느 날에/ 범이 와서 잡아갈까.’
고 을 원의 가렴주구가 하도 심해서 백성들이 죽을 맛이었다. 원님이 운문사 중을 보고, “지금쯤 너희 절의 폭포가 좋겠구나.”하자, 이 중은 또 뭘 달라나 하고 놀라, “절의 폭포는 올여름에 멧돼지가 전부 먹어 버렸습니다.”했다 한다. 그러자, 강릉 한송정이 좋다고 관리들의 행차가 끊이지 않으니, 그 고장 백성들이 한송정은 언제쯤 범이 잡아갈까 하며 부른 노래다. 날카로운 풍자 정신으로 무장하였으면서도 재미나고, 읽는 이의 속까지 시원해지는 이 이야기는 《견첩록》에 실려 전한다.
패설집 속의 이야기 1 : 풍자와 기지가 번뜩이는 이야기와 우스개〔笑話〕
윗 수염, 아랫수염 하는 ‘수염잡이의 술 대접’‘무지렁이가 중국 사신을 눌러 이긴 이야기’‘수염 좋은 사나이와 중국 사신’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다. 기가 막히게 입담이 좋은 선비 이야기 ‘서울에서 제일가는 말솜씨’ 또한 뒤로 나자빠지게 재미나다. ‘자라탕의 진미를 모르고’‘맑은 하늘에 벼락을 맞은 며느리’도 우스갯소리. 또한 솔로몬의 현명한 재판과 같은 종류인 ‘솥을 두고 내린 판결’도 재미나다. 그런가 하면 민담과 야담이 서로 넘나들고 있음을 보여 주는 이야기도 있다. 들쥐가 아들의 혼처 찾아 헤매다가 결국 들쥐만 한 혼처가 없다는 것을 깨달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로드무비 ‘들쥐의 혼인’이나 소가 된 사람 이야기 ‘여우 고개’도 이 책에서 읽노라면 더욱 새롭다.
패설집 속의 이야기 2 : 유명인들의 일화담
유명인에 관한 궁금증과 관심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패설의 주요 소재이기도 하다.
최 무선, 정몽주, 이색, 세종대왕, 남이, 최항, 허성, 양사언, 성삼문, 박팽년, 유응부, 이개, 연산, 성종, 서거정, 김시습, 김종직, 서경덕, 황진이, 선조, 이덕형, 이정암, 김성일, 논개, 광해, 이완, 조헌, 권필 등에 관한 일화를 볼 수 있다.
그 런가 하면, 예술인이나 기술인 들의 초상을 볼 수 있는 글도 많다.‘금강산을 두고 온 화가 김시’ ‘귀천을 가리지 않은 침술’‘명의 이익성’‘바둑의 명수 김종귀’‘거문고의 명수 김성기’‘붓으로 살아가는 최칠칠’‘석공들의 아름다운 풍습’ 들이 그것이다.
패설집 속의 이야기 3 : 인물의 강화, 허구적 서사 구조의 발전
‘한명회와 현명한 좌수의 딸’‘재상의 딸 진복의 말로’‘여자한테 종아리 맞은 홍우원’에 이르면, 사건은 이미 사실이냐 아니냐는 더 이상 문제가 안 된다. 그 자체로서 빼어나게 잘 짜인 서사 구조를 자랑하기 때문이다.‘다섯 처녀를 중매한 이광정’‘발가벗은 궤 제독’ 등은 빛나는 풍자담이면서 서사 구조도 탁월한 작품이다.
패설집 속의 이야기 4 : 자기 계급에 대한 비판과 성찰
패 설집 작가들은 자기 계급에 대한 비판과 성찰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전복을 따는 자와 먹는 자’ ‘사람이 죽었어도 놀이만 즐겨’‘고생하느니 쌀을 지고 빠져 죽어’‘가소로운 열녀문’‘한 정승의 벼농사’‘독한 매 아래 억울한 죄가 없으랴’‘백성의 눈은 밝다’‘선조에게 돌을 던진 백성’‘풍년은 광해의 원수’‘늙은 궁녀의 말’‘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벼슬아치들의 더러운 꼴’‘세상이 불안하니 일에도 불성실’을 읽노라면 실록이 기록하지 않은 진실들을 만날 수 있다.
그러면서 모범이 되는 모습들도 기록했다.‘공로를 자랑하지 않는 이정암’‘늙을수록 더 자기 수양’ ‘꿀은 민가에, 잣은 산 위에’‘방울 차고 성격 개조’‘잘못된 것은 곧 인정한다’‘비방받고 가질 태도’ 등이 자기 성찰의 기록이다.
어떤 책들에서 이야기를 골랐나?
《어우야담》을 비롯 조선 중기와 후기에 쓰여진 패설집들에서 뛰어난 이야기 249편을 골라 실었다.
《어 우야담》은 조선 광해군 때 유몽인(1559?1623)이 쓴 설화 문학의 보물 창고. 유몽인은 간결하면서 풍자가 넘치고 기지가 번뜩이는 이야기들을 써 설화 문학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풍부한 구상으로 깊이 있는 글을 쓰면서도 참신한 표현을 했다. 《공사견문록》은 조선 후기 정재륜(1648?1723)이 쓴 패설집. 효종의 부마로, 궁중을 드나들며 두루 보고 들은 사실과 일화들을 기록했다.
그 밖에 《필원잡기》《오산설림》《해동악부》《해동잡록》《장빈거사호찬》《송계만록》《죽창한화》《송도기이》《자해필담》《동야휘집》《이향견문록》《해동 방어》《견첩록》《금계필담》《청구야담》《소한세설》《국조명신록》《민로봉집》《지봉유설》《상산세고》《기언》《당원록》《연려실기술》《창의록》 《해주최씨족보행장》《계서잡록》에서 몇 편씩 골랐다.
겨레고전문학선집을 펴내며
자의적인 해석은 삼가야 한다 - 필원잡기
아악과 천문 의기의 창제 / 정몽주의 세 가지 흠 / 최윤덕의 용맹과 그 아버지 / 최항의 성품과 학문 / 공정한 판결 / 자의적인 해석은 삼가야 한다 / 중의 꾀에 넘어간 허성 / 문과와 무과의 합격자 발표 / 사간원과 사헌부
늙었어도 원대한 마음으로 - 어우야담
김시습의 풍자시 / 시인의 느낌은 한가지인가 / 점필재의 작품과 김수온 / 파쟁을 증오한 유극신의 시 / 정지승의 시 재주 / 어려운 것은 구상이다 / 임종시 두 편 / 황진이와 시조 한 수 / 안견의 참대 그림 / 천하에 이름난 점쟁이 / 수염잡이의 술 대접 / 수염 좋은 사나이와 중국 사신 / 김인복의 말솜씨 / 승정원 이야기 / 늙었어도 원대한 마음으로 / 잔칫집에 간 임제 / 자라탕의 진미를 모르고 / 정자당의 호방함 / 맑은 하늘에 벼락을 맞은 며느리 / 서천령의 장기 수 / 성자항의 말 관상 / 명기 성산월과 고루한 서생 / 석개가 명창이 되기까지 / 학 둥지에서 나온 신기한 돌 / 허 부인의 초례상 / 이옥견의 신 솜씨 / 들쥐의 혼인 / 여우 고개 / 선조 을미년 흉년에 있은 일들 / 강남덕 어머니 / 정생 일가의 기이한 만남 / 재상의 딸 진복의 말로 / 동방의 갑부, 정사룡 / 기술의 독점 / 죄 없는 이를 고발하는 일 / 남의 눈알을 뺐다가 / 전복을 따는 자와 먹는 자 / 영광 태수의 고기잡이 / 고생하느니 쌀을 지고 빠져 죽어 / 그림과 문장 / 가소로운 열녀문 / 벼슬길과 사화 / 원님 아들의 음식 투정 / 한 정승의 벼농사 / 남모르게 선을 베푼다 / 삼년상에 죽는 효자 / 김계휘의 총명 / 유성룡의 군사 훈련 / 박응남의 공정함 / 절약과 이재에 밝은 윤현 / 곽지원과 홍순언의 의협심 / 정인지의 지조 / 이율곡과 유성룡 / 담이 큰 소년 홍섬 / 황수신의 용단 / 김종서의 육진 개척 / 죽어서도 썩지 못한 김응하 장군 / 사명당의 행적 / 신말주의 용력 / 조막종과 안경무의 뛰어난 용력 / 김여물의 기개 / 활 잘 쏘는 방법 / 소나무 옮겨 심는 법 / 우리 나라 음식 몇 가지 / 중국 사신 행차와 타루악 / 용의 성냄인가, 악어의 장난인가 / 매가 새끼 기르는 법 / 족제비와 뱀 / 개장 추렴과 독수리 사냥
모진 매 아래 어찌 억울한 죄가 없으랴 - 해동악부, 오산설림, 장빈거사호찬, 송계만록
정몽주의 충절 / 이색의 울음 / 명나라에 갔다가 / 원천석의 식견 / 윤결의 시 감식 / 서경덕의 유람 / 성종 이야기 / 살구나무와 서경덕 / 공후인과 여옥 / 형제간의 우애 / 폭군 연산의 만행 / 신백록의 시평 / 명필들의 서첩 / 백마강 시 두 편 / 오겸의 비석 처리 / 독한 매 아래 억울한 죄가 없으랴 / 남을 놀리다가 망신 / 벽란도를 건너다가
선비의 배움과 농사꾼의 일은 한가지 - 해동잡록
박팽년 / 유응부의 기개 / 선비의 배움과 농사꾼의 일은 한가지 / 이개의 충절과 절명시 / 서거정의 저술 / 안견의 ‘청산백운도’ / 최무선의 화약과 화통 / 흠경각과 보루각
백성의 눈을 밝다 - 죽창한화
방탕한 윤생의 말로 / 비판에 대한 태도 / 김상용의 죽음 / 광해 때 백성의 원한 / 덤비다가 망신 / 백성의 눈은 밝다 / 목은 선생의 문장 / 조선의 무인 등용 / 불공을 파탄시킨 하경청
옥가락지로 맺은 인연 - 자해필담, 동야휘집, 송도기이
이정암의 연안성 싸움 승리 / 선조왕과 김성일의 바른말 / “아, 통제사가 죽었구나!” / 임진왜란과 권율 / 권 씨의 미덕 / 첩이 될 뻔한 유 씨의 패기 / 옥가락지로 맺은 인연 / 화장사의 구렁이 / 주인의 시체를 지킨 충견 / 송악 신사의 폐풍 / 황진이의 무덤을 찾은 임제
풍년은 광해의 원수 - 공사견문록
선조에게 돌을 던진 백성 / 선조의 외증조부 안탄대 / 풍년은 광해의 원수 / 억울한 죄인 / 싸우지 못할 바엔 물러가라 / 늙은 궁녀의 말 / 광해를 꾸짖는 궁비 / 망할 놈은 망할 짓만 / “내가 그 꾀에 넘어가다니” / 덮어놓고 폐지는 금물 / 세자의 바른말 / 유몽인의 상부사 / 훈련대장 이완 / 이완 대장과 말 / 김신국의 아량 / 유정량의 기풍 / 옳은 길에서 벗어남은 화의 근본 / 서로 장점을 사랑하는 벗 / 검박한 이시백 / 판결은 공정한 마음으로 / 눈멀었다고 파혼이 될 말인가 / 김자점의 잔인함 / 뇌물로 벼슬을 구하는 길 / 공로를 자랑하지 않는 이정암 / 남의 형편을 고려해야 한다 / 늙을수록 더 자기 수양 / 비방 받고 가질 태도 / 명예를 좋아하지 않는다 / 아깝구나, 권필의 기개 / 방울 차고 성격 개조 / 친해도 규율은 엄수 / 주는 것 아니면 갖지 말라 / 잘못된 것은 곧 인정한다 / 사심을 버리고 / 남의 의심을 사지 않게 / 오랜 폐해를 없애기 위해 / 정수리에 침 한 대 / 눈 가리고 아옹 / 잔인한 죄수 심문 / 사람이 죽었어도 놀이만 즐겨 / 결의는 단행해야 한다 / 원칙에서 벗어나면 망한다 / 세도를 무시한 정담 / 백금 삼십 냥이 사람을 망쳐 /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 벼슬아치들의 더러운 꼴 / 석공들의 아름다운 풍습 / 세상이 불안하니 일에도 불성실 /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다
귀천을 가리지 않은 침술 - 이향견문록
애남의 지혜 / 삼천 정 은자를 서로 사양 / 백금을 묻어 버린 임 씨 부인 / 범의 안내를 받은 효부 / 어린 남편을 구한 의로운 안해 / 한석봉의 글씨 / 김명국의 그림 / 단원 김홍도 / 붓으로 살아가는 최칠칠 / 기인 임희지 / 금강산을 두고 온 화가 김시 / 귀천을 가리지 않은 침술 / 명의 이익성 / 바둑의 명수 김종귀 / 거문고의 명수 김성기
빈 서재를 지키다가 - 해동방어
한명회와 현명한 좌수의 딸 / 연산을 골탕 먹인 부인 / 승정원을 구경하다가 / 빈 서재를 지키다가 / 발가벗은 ‘궤 제독’
폭포는 돼지가 다 먹었지요 - 견첩록
단종의 시 / 요소를 찌른 시 한 수 / 성담수의 시 한 편 / 여자 시인의 시 몇 편 / 율곡의 선견지명 / 이계맹의 후진 격려 / 장세호의 의협심 / 조헌의 비석과 석공 / 남의 어려움을 자기 일처럼 / 아버지와 아들 / 꿀은 민가에, 잣은 산 위에 / 의심받을 일은 말아야지 / 중의 머리끄덩이를 끌고 / 폭포는 돼지가 다 먹었지요 / 양반 정치의 부패상 / 실무에 어두우면 식자가 우환 / 한 사람을 없애 여섯 도적을 제거하다 / 중의 머리끄덩이를 끌다 / 아이들 장난도 반역죄 / 김대인의 용맹과 죽음 / 권필의 필화 / 강진흔의 의연한 죽음 / 원숭이를 잡은 매의 지혜 / 범에게 이용된 표범의 죽음 / 제주 판관의 구렁이 처단 / 평지에서 나온 연꽃 / 문익점과 면화 / 우리 나라의 담배 재배
첫날밤의 약속 - 금계필담
힘장사들 이야기 / 겸손을 배운 힘장사 / 영조 때의 금주령 / 첫날밤의 약속 / 열부의 한을 풀다 / 유복자의 상봉 / 논개와 그를 읊은 시 / 남이와 강순의 죽음
용산강의 낚시꾼 - 청구야담
산삼 캐러 갔던 세 사람 / 세 시체를 묻어 준 무사 / 여자한테 종아리 맞은 홍우원 / 다섯 처녀를 중매한 이광정 / 되돌아온 홍순언의 선행 / 왕을 감동시킨 아이 김규 / 김굉의 평안 감사 탄핵 / 용산강의 낚시꾼
안질로 눈을 씻다가 사형 - 소한세설 외
효녀와 두꺼비 / 이 태조와 박순의 죽음 / 윤회와 거위 / 성삼문 / 김렴의 은퇴 / 진주 신을 보고 눈물 흘린 이원익 / 이덕형의 풍격 / 원호의 청렴 / 어린 삼 형제의 효성과 용감함 / 예술의 천재 최경창 / 양사언의 어머니 / 안질로 눈을 씻다가 사형 / 참대가 네 것이면 송아지는 내 것이다
패설 문학에 관하여 /정홍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