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설이 개척한 서사 장르 1 : 비판과 성찰의 글쓰기
고 려와 조선 시대의 패설집 안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부역 나간 남편에게 끼닛거리를 대려고 머리채를 끊어 판 안해 이야기(‘부역꾼의 안해’), 집안이 한미하여 붙었던 과거에서 떨어진 선비 이야기처럼 세태를 비판하는 이야기(‘붙었던 과거도 가문 때문에 떨어진다’)나 적서 차별 문제(‘서자 이숙의 한탄’), 과부 개가 금지를 비판하는 글(‘과부 딸을 개가시킨 것도 죄’)이 있다. 또 불우한 시대를 사는 선비 ‘가짜 장님 조운흘’, 관가의 물건을 함부로 쓰면 안 된다는 글(‘아우의 빨랫줄을 나무란 이극배’) 등이 있다.
패설이 개척한 서사 장르 2 : 인물 이야기
패설에는 인물 이야기가 많다. 역사책에는 실리지 않지만 의미있는 것들을 담는다. 이성계에게 패한 고려조 인사들을 다룬 ‘금 보기를 돌같이 한 최영 장군’‘이색의 울음’이나 황희가 고려 말에 숨어살 때의 일화인 ‘황희와 밭갈이하는 노인’ 들이 패설다운 인물 이야기이다. 역사책에서 제대로 조명하지 않는 인물들에 대한 관심은 여성과 천인에게 이어진다. ‘우리 나라 여자 예술가들’ ‘거문고 명수 이마지의 한숨’‘노비 출신 화가인 이상좌 부자’가 그러하다.
패설이 개척한 서사 장르 3 : 스토리성의 만개, 소설로 가는 다리
소 설의 선구적인 모습들이 패설에 들어 있다. ‘세상에서 둘도 없는 외입쟁이’‘거문고에 귀신이 붙었다고 야단’‘자비심 모르는 멧돼지’‘광통교 선사가 언짢다면 좋은 법’ 처럼 재미나는 이야기가 있다. 민담과 서로 넘나드는 이야기도 있는데,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놀리는 이야기의 중요한 갈래라 할, 스님 속인 상좌 이야기(‘스님 속인 상좌’‘상좌에게 속고 이 부러진 중’‘물 건너는 중’)나 ‘어리석은 사위’ 이야기 들이다.
또한 금오신화처럼 전기 소설에 근접한 이야기도 패설집에 자주 보인다(‘사천감과 귀녀’‘채생을 홀린 여인’).
패설이 개척한 서사 장르 4 : 정보 전달 글, 기록 기사문
패 설이라는 갈래가 넉넉한 푸대 자루 같은지라 다종 다양한 산문들이 이 패설 안에 포섭되어 있는데, 덕분에 정보 전달 글도 여기서 만나게 된다. 서울서 멀지 않은 행락지 정보를 읽노라면, 서울과 경기도 일대를 잘 아는 이라면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가게 될 것이다. 과거 치르는 절차와 과장의 풍경을 보여주는 글이 있는가 하면, 동빙고 서빙고에서 얼음을 어떻게 떠 와서 보관하고 나누어 주는지 보여 주는 글도 있다. 경축 행사차 불꽃놀이를 벌이는 풍경, 광대놀음이나 악귀몰이하는 법을 사실대로 적은 글도 무척 흥미롭다. 패설집은 그 시대의 잡지 노릇을 한 것일지 모른다.
패설집 속 기사문 예 :
지리산 청학동/처용 놀이/불꽃놀이/악귀몰이/약밥의 유래/옛 도읍들/한성 안의 명승지/음악의 남용/사치스러운 혼례/뛰어오르는 물가/집현전에서 양성된 인재들/과거 보는 절차/연중행사/성종 때 펴낸 서적/기우제의 절차/언문과 언문청/활자의 발달/산채와 숭어의 어원/불교의 성쇠/여승이 있는 절/승문원의 새 청사/역대 작가와 저작집/향도들의 순후한 풍속/동서빙고의 얼음 저장/경비의 남용과 횡간/조선 안의 온천/훈장으로 출세한 사람들/중의 과거와 벼슬/독서당의 유래/문무관의 잔치/흰 사기와 그림 사기/세종 때의 종이 생산/삼포의 일본인(그 밖에도 아주 많다.)
어떤 책들에서 이야기를 골랐나?
고려 때부터 조선 중기까지의 이야기를 담았다.《용재총화》를 비롯 여러 패설집에서 251편을 골랐다.《용재총화》는 조선 성종 때 성현(1439?1504)이 쓴 패설집으로, 고려 때부터 당대까지의 민간 풍속, 문물제도, 역사, 지리, 종교, 문학, 음악, 서화 등 문화 전반에 걸쳐 쓴 책. 일화나 재미난 이야기가 많다.
《패관잡기》는 조선 명종 때 어숙권이 쓴 패설집으로, 조선 전기의 외교 관계, 야사와 풍속을 기록했을 뿐 아니라, 설화를 풍성하게 담고 있다.
그 밖에, 《고려사》《파한집》《백운소설》《보한집》《역옹패설》《청파극담》《용천담적기》《송와잡설》《청강쇄어》 들에서도 골랐다.
패설 문학=패관 문학이란 무엇인가?
패설이라는 말의 어원은, 이제현의 《역옹패설》에서 기원한다.
“ ‘패稗’의 뜻을 따지면 ‘돌피’라는 말이다. 함부로 적어 놓은 글들을 기쁘게 뒤적거려 보나 아무 맺힌 것, 속살 있는 것이 없어서 그 하찮은 바가 돌피와 다를 것이 없었다. 그래서 그것들을 한데 묶어 ‘패설稗說’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요즘 말로 하면 붓 가는 대로 끼적거린 수필 같은 셈이다. 어깨에 힘 빼고 자유롭게 쓴 글이다.
북의 학자 정홍교 선생이 쓴 해설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패 설은 봉건 시기에 봉건 통치배들 양반 사대부들에게서 멸시와 천대를 받아 왔지만 실제로는 중세 예술적 산문의 더없이 풍부한 원천이었으며 지나간 시대를 산 사람들의 곡절 많은 생활과 사상 감정, 당대 사회의 정치와 경제, 문화와 풍습, 도덕과 인정세태 등 시대와 생활의 진면모를 다양한 측면에서 생동하게 보여 주는 사료의 총서라고 할 수 있다.
하기에 패설을 보잘것없고 하찮은 글이라고 천시한 양반 선비들 자신이 패설에 깊은 관심을 돌렸고 또한 스스로 패설에 속하는 글들을 썼던 것이다. 이것은 패설이야말로 사람들에게 민족의 역사와 변천하는 시대의 추향을 알려 주고 생활의 교훈을 체득케 한 중세 산문 문학의 뗄 수 없는 중요한 구성 부분이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예술적 산문의 풍부한 원천으로서의 패설의 문학사적 가치는 바로 산문 문학의 중추라고 할 수 있는 소설 형식이 패설에서 갈라져 나오고 여행기, 수필, 실화, 사화, 야담, 시화, 시평 등 산문 문학의 다른 모든 형식들도 모두 중세기에 패설이란 이름으로 불려졌다는 사실만 가지고도 알 수 있다.”
―정홍교의 ‘패설 문학에 관하여’에서
겨레고전문학선집을 펴내며
부역꾼의 안해 - 고려사
예성강곡 / 명주곡 / 가곡 정과정 / 부역꾼의 안해 / 왕건과 유 씨 부인 / 현종의 출생 / 현종의 시 / 하늘을 움직인 서릉의 효성 / 아비의 원수를 갚은 소년 최누백 / 의로운 두 여인
부벽루에 흐르던 시정 - 파한집
가야산에 은거한 최치원 / 한송정의 시 / 그 임금에 그 신하 / 탄연의 글씨 / 천수사 남문도 / 지리산 청학동 / 문장에 대하여 / 김자의의 술잔 / 부벽루에 흐르던 시정
을지문덕 장군의 시 - 백운소설
을지문덕 장군의 시 / 문장으로 나라를 빛낸 문인들
대동강을 노래하다 - 보한집
강감찬의 시 / 개골산의 유래 / 무너진 옛 도시 / 대동강을 노래하다 / 박인량의 시 / 최치원의 임경대 / 해와 달도 무색한 이규보의 시 / 연등회 / 주인을 살린 개 / 범의 뉘우침 / 사천감과 귀녀
거문고에 귀신이 붙었다고 야단 - 역옹패설
머리말 / 은혜 갚은 사슴 / 박세통과 거북 / 문안공의 옳은 주장 / 어리석은 지방관 / 현명한 재판 / 원충갑과 이무의 용맹 / 주먹 바람 천년만년 / 거문고에 귀신이 붙었다고 야단
장난꾼 용태 - 용재총화
유학과 글공부 / 문학과 문학자들의 수법 / 우리 나라의 글씨 잘 쓰는 사람들 / 우리 나라의 화가 / 음악의 명수들 / 고루한 교수들 / 모르고 아는 체하는 음악 관리 / 처용 놀이 / 불놀이 / 악귀몰이 / 약밥의 유래 / 옛 도읍들 / 한성 안의 명승지 / 음악의 남용 / 사치스러운 혼례 / 뛰어오르는 물가 / 집현전에서 양성된 인재들 / 과거 보는 절차 / 연중행사 / 성종 때 간행된 서적 / 내가 쓴 책 / 안평 대군 이야기 / 범 쫓은 강감찬 / 장난꾼 영태 / 이방실 남매 / 가짜 장님 조운흘 / 한종유의 젊은 시절 / 금 보기를 돌같이 한 최영 장군 / 정몽주의 최후 / 충선왕의 정든 여자 / 이숙번의 거드름 / 사이 나쁜 변계량과 김구경 / 아이에게도 너그러운 황희 정승 / 정초의 총명 / 목은의 울음 / 태종의 신임을 받은 박석명 / 죽음 면한 박안신의 배포 / 성석린을 부모처럼 섬긴 맹사성 / 음악 좋아하는 정씨 형제 / 왜적을 물리친 이옥 / 세 번 죽을 뻔한 하경복 / 성석인과 이행의 우정 / 김종서의 시기 / 허튼 말에는 허튼 말로
물 건너는 중 - 용재총화 2
이예의 멋들어진 시 / 성간의 봄노래 / 자연에서 얻은 최수의 시 / 털 송곳 손에 쥐고 / 세종 시대의 문사 우대 / 정갑손의 바른말 / 붓 매는 김호생의 별호 / 쾌활한 박이창의 자살 / 백귀린의 의술과 미덕 / 김수온의 학문과 글 솜씨 / 성리학에 밝은 최지 / 도량 넓은 천출 이양생 / 부원군과 녹사의 첫 대면 / 김속시의 맹수 사냥 / 윤통의 익살 / 양녕 대군 이야기 / 죽어서는 보살의 형 / 어리석은 풍수쟁이 / 입으로 흉내 내는 재주 / 진짜 범보다 가짜 범이 겁난다 / 강희안을 두고 지은 성삼문의 시 / 푸른 귤 / 집을 빌린 사람과 아들을 빌린 사람 / 정치를 이로 하나 / 신 씨의 허풍 / 꾀약은 청주 사람 / 비둘기 소동 / 어리석은 형과 똑똑한 아우 / 스님을 속인 상좌 / 상좌에게 속고 이 부러진 중 / 물 건너는 중 / 어리석은 사위 / 명통사의 장님들 / 하늘 위의 장님 / 풍산수의 계산법 / 불상이나 신주나 / 안생의 사랑 / 봉석주의 재산 늘리기 / 수원 기생의 정론 / 변구상의 공사 / 딸에게 주는 교훈
개구리 소리도 들을 탓 - 용재총화 3
기우제의 절차 / 언문과 언문청 / 활자의 발달 / 산채와 숭어의 어원 / 불교의 성쇠 / 여승이 있는 절 / 승문원의 새 청사 / 역대 작가와 저작집 / 향도들의 순후한 풍속 / 동서빙고의 얼음 저장 / 경비의 남용과 횡간 / 조선 안의 온천 / 훈장으로 출세한 사람들 / 중의 과거와 벼슬 / 독서당의 유래 / 문무관의 잔치 / 흰 사기와 그림 사기 / 세종 때의 종이 생산 / 삼포의 일본인 / 여진족의 행패 / 일본 풍속 / 사당채와 조상 제사 / 성불도와 그것을 본뜬 놀이들 / 양녕 대군의 풍자 / 두 무신의 발언 / 김종련의 우직한 천성 / 음악 일을 맡은 박연 / 이집과 최원도의 우정 / 장인바치로 유명한 사람들 / 세상에서 둘도 없는 외입쟁이 / 아비는 벗, 그 아들은 윗도리 / 갠 날도 우장 준비 / 김세적의 활 공부 / 글씨 못 쓰는 승지 / 얼굴 못생긴 김현보 부자 / 하륜의 계책 / 김종서와 최흥효의 글씨 비교 / 파리 목사 / 고집퉁이 신 씨 / 맨 꼴찌도 다행 / 남의 글로 과거 급제 / 바람 덕에 과거 급제 / 광통교 선사가 언짢다면 좋은 법 / 짐승이 많은 철원과 평강 / 꽃을 나누어 주는 탐화랑 / 속담 몇 마디 / 팥꽃은 누렇고 콩꽃은 붉다 / 개구리 소리도 들을 탓
빈한해도 때 묻지 않게 - 패관잡기 1
어무적의 매화부 / 붙었던 과거도 가문 때문에 떨어진다 / 서자 이숙의 한탄 / 적서의 차별은 부당하다 / 닭을 두고 지은 시 / 욕심 사나운 원님의 죽음을 시로 읊다 / 광대놀음도 이로운 것 / 김시습의 자서전 / 성삼문의 민첩한 재주 / 강직한 관리 권경우 / 노비 출신 화가인 이상좌 부자 / 빈한해도 때 묻지 않게 / 풍수쟁이를 반대한 문효공 / 죽어서도 미신을 반대 / 미신에 빠지지 않는 강직한 인물들 / 임원준의 음흉한 꾀 / 사간원 관리들의 다른 태도 / 앞뒤가 다른 조어정의 행실 / 서투른 중국 말로 인명을 구하다 / 파괴현으로 이름을 바꾼 서읍령 고개 / 과거 보러 가서 귀양 간 선비 / 말 못 하는 앵무새 / 모란과 함박꽃의 변색법 / 은이 귀해진 까닭 / 안동과 김해의 돌팔매 싸움 / 자비심 모르는 산돼지 / 사신 호송의 폐해 / 중국서 도망치다가 우리 나라에 붙들린 일본인들 / 서피장과 금박장의 이기심 / 서울 장사치의 송악산 굿 / 품질이 나쁜 무명의 통용
옛 어른이 공부하던 법 - 패관잡기 2
사람이 솟아 나왔다는 한라산 구멍 / 우리 나라의 패설들 / 조선 사람을 겁내던 여진족 / 유구국의 기후와 풍속 / 열흘 남짓 계속된 큰 지진 / 우리 나라 역대 여자 예술가 / 옛 어른이 공부하던 법 / 장사꾼 시인 / 썩은 새끼로 범을 동인다 / 흉년의 true혹한 광경 / 과부 딸을 개가시킨 것도 죄 / 악곡을 지은 죄로 죽다 / 같은 뜻을 가진 여러 가지 속담 / 어울리지 않는 일을 비유하는 속담 / 꾀꼬리의 새끼 사랑 / 청어 품고 임금을 보러 간 김시습
거문고 명수 이마지의 한숨 - 청파극담, 용천담적기, 청강쇄어
박연 폭포 / 황희의 인품 / 정승 유관의 청렴함 / 최윤덕의 어진 품성 / 애꾸눈 고치는 법 / 채생을 홀린 여인 / 거문고 명수 이마지의 한숨 / 범에게서 처녀를 빼앗은 중 / 풍산 씨 장가들기 / 김정국의 시 감식 / 아버지의 웃음과 아들의 기쁨
얼어 죽은 가난한 부부 - 송와잡설
알 수 없는 것 두 가지 / 얼어 죽은 가난한 부부 / 동무의 시체를 천 리 밖에서 져 오다 / 말 안 듣는 아들 / 황희와 밭갈이하는 노인 / 노승의 충고에 귀 기울인 윤 true판) / 정붕의 청렴한 지조 / 신숙주의 부인 / 이세좌 부인의 선견 / 범과 싸운 원주의 열부 / 불효자를 효자로 / 김안국의 문장 쓰는 법 / 원수를 용서한 정광필의 도량 / 김정국이 벗에게 보내는 충고 / 원천석의 지조 / 아우의 빨랫줄을 나무란 이극배 / 하위지의 아들 / 조 생원의 봉변 / 귀신 흉내를 낸 도둑
패설 문학에 관하여 /정홍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