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고전문학선집 12

조선 후기 김려의 시와 글

글짓기 조심하소

양장 | 152×223 mm | 904 쪽 | ISBN 9788984282285

김려는 백성들의 방언이나 상말을 써서 사회를 생생하게 표현하는 문체를 익혔다. 귀양살이를 하면서 만난 백성들을 강한 생활인으로, 삶의 주체로 세운 김려. “천하 어딜 가나 모두 다 형제”(방주의 노래)라는 선언에서, 새로운 사회가 다가오고 있음을 감지한 시인의 간절한 외침을 만날 수 있다.

청소년~어른

펴낸날 2006-02-28 | 1판 | 글 김려 | 옮긴이 오희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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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백여 년 전 조선의 풍토와 민중의 세계를 감동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개성이 풍부한 작가들이 숲의 나무처럼 많은 18세기 후반의 문단에서 김려(1766~1821)는 독특하다 못해 파격적인 작가다. 그는 하나의 주제 아래 수십 수에서 수백 수에 이르는 연작을 써 내고, 웅대한 장편 서사시를 창작함으로써 거침없는 필력을 발휘하였다. 국토의 남북단 유배지에서 11년 간 머물며 그는 조선의 다양한 민중의 거칠지만 아름다운 삶의 현장을 생생하게 포착하였다.
건강하고 자유분방한 북관민의 삶과 변방의 이색적 풍토를 묘사해 낸 ‘사유악부’, 남해 지역 어류의 생태와 인정을 묘사한 ‘우해이어보’, 백정의 딸을 며느리로 맞아들이는 장군의 이야기를 노래한 서사시 ‘방주의 노래〔古詩爲張遠卿妻沈氏作〕’ 등의 명작은 격정과 비분의 언어를 무기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 북의 번역자 오희복의 빼어난 번역은 2백여 년 전 조선의 풍토와 민중의 세계를 감동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 안대회(명지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지금 여기” 나의 이야기, 조선의 이야기를 쓴다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 조선은 여러 가지 도전에 직면하면서 중세 질서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민중들이 각성하면서 지배체재에 대한 저항이 거세지고 있었고, 지배 세력의 부패와 타락이 나날이 극심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진보는 더뎠다. 안타깝게도 새로운 사회로 가는 길은 멀었다.
문 학에서 새로운 움직임이 일어났다. 《열하일기》를 쓴 박지원과 북학파들, 그리고 김려나 이옥이 이러한 새로운 물결의 주인이었다. 과거답안 같은 고색창연한 문장이 아니라, 소품에다가 “지금 여기”, 조선의 사회 문제를 담기 시작했다.
김려는 슬플 때나 기쁠 때나 글을 쓴 작가였다. 그에게 글은 출세나 영달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귀양길 하루하루가 힘들고 모욕적인 가운데서도 김려는 날마다 글을 썼다. 귀양지에서 만난 상민과 천민들의 삶도 하나하나 기록했다. 글쓰기가 그에게 필화를 입게도 했지만, 여전히 힘이었다. 치유의 힘! 귀양살이는 그에게 끔찍한 고난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활을 발견하고 사람을 찾게 만든 소중한 체험이기도 했다. 이 체험은 김려의 문학에 숨을 불어넣고 뼈와 살이 되었다.


김려의 문학 세계를 온전히 보여 주는 남한 최초의 문집
정조-순조 연간 최고의 리얼리즘 작가인 김려는 수많은 작품을 남겼으나, 거듭된 귀양살이 탓에 잃어버린 작품이 많다고 했다. 그래도 남아 있는 작품이 꽤 많다.
《글 짓기 조심하소》에는 북에서 낸 〈조선고전문학선집〉의 《김려 작품집》을 새롭게 편집해서 내는 것이다. 귀양지에서 쓴 악부시 ‘사유악부’를 비롯, 장편 서사시 ‘방주의 노래’, 진해 앞바다의 물고기와 사람살이를 다 볼 수 있는 ‘우해이어보’, 귀양길에서 쓴 일기 ‘감담일기’, 인물 이야기 ‘단량패사’ 등 시 324수, 이야기 7편, 일기글 들을 두루 실었다. 이로써 김려의 문학 세계를 온전히 볼 수 있게 되었다.


김려의 대표작 :
함경도 민중들의 삶을 담은 리얼리즘 연작시 ‘사유악부’ : 김려는 그의 인생 삼십대를 유배지에서 보냈다. 귀양살이하는 동안 농사꾼, 어부, 장사꾼, 사냥꾼, 머슴, 기생, 아이 들과 신분과 성별을 넘어서서 아주 가깝게 사귀었다. 이 사람들에게 향하는 연민과 애정은 ‘사유악부’ 곳곳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춥고 험한 자연 속에서 사는 씩씩한 ‘삭방 남아’들과 강인한 여인들에게 그는 매혹되었다. 빼앗기고 억눌려 사는 백성들의 삶은 한없이 고단했으나 그이들은 분명 건강했다.

신분 질서에 도전한 서사시 ‘방주의 노래’ :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미완의 장편 서사시 ‘방주의 노래〔古詩爲張遠卿妻沈氏作〕’는 김려의 이상이 절정에 이른 작품이다. 양반과 백정의 혼인이라는 금기에 도전하면서 오래된 신분 질서를 타파하고 사람이 모두 다 존중받는 새로운 세상을 열망한다. 1860년 최제우가 ‘동학’을 주창하며 만민 평등 사상을 내세운 것을 생각하면, 이 시에서 “천하 어딜 가나 모두 다 형제”라고 한 것은 시대를 앞선 외침이다.

세 계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가져온 험난한 귀양길의 일기, ‘감담일기’ : ‘감담일기’는 1797년 11월 12일 형조에 갇히게 되면서부터 다음해 1월 11일 부령에서 이미 죽은 친구를 만나는 꿈을 꾸고 쓰기까지의 기록이다. 11월 14일 길을 떠나 스무이레 만인 12월 10일 부령에 도착하였다. 한겨울 험한 날씨 속에 강행군한 귀양길의 어려움은 북관민들의 세계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삶에 대한 반성과 삶의 자세를 되돌아보게 한 계기이기도 했다.

우리 나라 최초의 어보,‘우해이어보’ :《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는 김려가 1803년 우해(지금의 진해)에서 귀양살이할 때 쓴 것이다. 정약전의《현산어보》보다 11년 앞서 나왔다. 김려는 《우해이어보》에 물고기들의 생태를 기록하면서 ‘우산잡곡왈牛山雜曲曰’이라 하고 시를 붙여, 경상도 지방 어민의 삶을 담아냈다.

역사의 이면에 숨겨진 인물들을 표면으로 끌어낸, ‘단량패사’ : 젊어서부터 김려는 정사가 이미 제 기능을 잃었다고 생각해서 야사에서 그 대안을 찾았다. 야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이한 행적을 지닌 인물들을 ‘단량패사丹良稗史’로 엮었다. 이 인물들을 통해 당쟁의 폐해를 심각하게 보여 주었으며 당시 능력이 있어도 신분제에 막혀 세상에 쓰이지 못하는 모순을 드러냈다.


우리 겨레의 말결을 살려낸 뛰어난 국역
북의 학자 오희복 선생이 우리 말로 옮겼는데, 자구에 매이지 않고 편안히 읽히도록, 입말로 잘 풀어 놓았다. 특히나 김려의 시는 어렵기로 유명한데, 쉬운 입말로 풍성히 옮겨 놓아, 이 책은 고전 문학을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기회이다.


글쓴이와 옮긴이

글쓴이 김려
1766년에 태어나 1821년까지 쉰여섯 해를 살았다.
열다섯 살에 성균관에 들어가, 강이천, 김조순, 이옥 들과 어울렸다. 이들과 함께 정통 고문에서 벗어나 시정의 세태를 백성들의 상말을 써서 표현하는 ‘패사 소품稗史小品’ 문체를 익혔다.
서 른두 살 나던 1797년에 강이천의 유언비어 사건에 휘말려 함경도 부령으로 유배를 갔다. 1801년 다시 경상도 진해로 귀양을 갔다. 십여 년의 귀양살이는 김려의 문학에 숨을 불어넣고 뼈와 살이 되었다. 귀양지에서 겪은 일들과 그곳에서 만난 백성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 낸 시들을 ‘사유악부思牖樂府’에 담았다. 진해 바닷가에서 쓴 ‘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는 물고기들의 생태를 기록한 소중한 자료이면서 어촌의 삶을 담은 문학이다.
백정의 딸 방주의 일생을 노래한 ‘방주의 노래’는 장편 서사시의 걸작으로 꼽힌다. 그 밖에 농사지은 경험을 담은 ‘만선와잉고萬蟬窩賸藁’, 현감으로 지내면서 쓴 ‘황성리곡黃城俚曲’, 부령으로 귀양 가면서 쓴 ‘감담일기坎窞日記’ 들이 《담정유고》에 갈무리되어 있다.


옮긴이 오희복
오희복은 현재 김일성 종합 대학의 교수로 있다. 고전 문학을 연구하였으며, 논문으로 ‘구전설화 작품들의 형태적 특성에 대한 간단한 고찰’이 있다. 《임진년 난리를 당하매》에 든 의병장들의 글을 우리 말로 옮겼고, 《옥린몽》, 《쌍천기봉》, 《사성기봉》 들을 윤색했다.
겨레고전문학선집을 펴내며

글짓기조심하소 ― '사유악부'에서
방주의 노래
질 버치엔 정어리가 그득 ― '우해이어보'에서
다복다복 자라난 저 시금치 ― '만선와잉고'에서
모진 바람 휩쓸더니 ― '귀현관시초'에서
여릉 고향 집이 그리워 ― '의당별고'에서
황성에서 부른 노래 ― '간성춘예집'에서
일곱 사람 이야기 ― '단량패사'에서
부령으로 귀양 가며 쓴 일기

부록
김려 연보
김려 작품에 대하여 /김햐명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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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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