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오백 년 최고의 문장가, ‘이규보’
그가 쓴 시와 산문의 알맹이를 한자리에 모았습니다
이규보의 작품 가운데 고등 학교 18종 문학 교과서에 실린 것을 보면 ‘국선생전’을 비롯해 ‘토실을 허문 데 대한 설’, ‘경설’, ‘슬견설’, ‘이옥설’ 같은 산문 문학부터 ‘동명왕편’ 같은 시가 작품까지 아주 풍성하다. 팔백 년 전에 쓰여진 이규보의 글을 오늘날 새롭게 배우려 하는 까닭은 무엇인지,《동명왕의 노래》와 《조물주에게 묻노라》에 실린 작품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두 책에서 고려 오백 년 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시인으로 평가받는 이규보 문학의 전모를 볼 수 있으며, 자유분방하고 독창적인 시풍을 보여 주었던 이규보의 시 작품을 생동감 넘치는 북의 번역으로 만날 수 있다.
‘고구려의 기상을 노래하라’ : 민족 의식을 드높인 시인
이 규보는 고려 중기의 격동기에 태어나, 무인 정권의 등장을 몸으로 겪었다. 젊은 날에는 천마산에 머물며 스스로 ‘백운거사’라 칭했는데, 흰 구름처럼 자유분방한 의지를 지니고 살려고 했다. 문벌 귀족과는 다른 처지에 있으면서 새로운 세계관을 지녔던 이규보는, 몽고의 침략에 온 나라가 항쟁하던 시기를 살면서 민족 의식을 지니고 주체적인 문학을 이룩하려 애썼다.
그는 우리 민족의 역사 현실에 주목하고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지식인이었다. 우리 문학사에서 처음으로 민족의 주체성을 세우는 데 눈을 돌려, 문학을 통해 우리 민족의 긍지를 표현하려 노력했다.
특히 ‘동명왕편’에 그런 것이 잘 드러나 있다.
“그 옛날 쓰던 활은 벽 위에 걸려 있고 원수를 베던 칼도 칼집에 들었도다. 아직도 나라 위한 붉은 마음 살아 있어 꿈속에선 원수를 쏘아 없앤다네.” 하고 노래했던 이규보는 실제 삶에서도 늙은 몸을 이끌고 직접 전장에 나가기도 했다. 몽고의 침입을 받는 동안 이규보가 보여 주었던 문학관이나 삶은 원나라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야 했던 당대 사람들, 또 후대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사회시․농민시의 선구자
이 규보 이전에도 농촌을 소재로 쓴 시는 있었으나, 이규보가 쓴 시들과는 큰 차이가 있다. 이규보는 농민의 처지에서 농민의 소리를 대신 낸 시를 여러 편 썼다. 특권 의식에 반발했고, 몽고와 싸우는 동안에도 농민들을 애틋하게 여기는 시를 썼다.
농민 봉기와 외적의 침략을 두고 쓴 작품도 여럿이며 ‘길가에 버린 아이를 두고’라는 시를 통해서는 인도주의자 이규보를 만날 수 있고, 종을 가엾게 여겨 노비 문서를 불태웠다는 이야기도 문학으로 전해진다. 농민의 편에 서서, 농민의 뜻을 전달하고자 했고 그러면서 벼슬아치들을 호되게 꾸중하는 시도 많이 남겼다.
“구슬같이 희디흰 이밥과 고인 물같이 맑은 술은 바로 농사꾼이 만든 것이라 그들이 먹는 것을 하늘인들 허물하랴”고 노래한 ‘농사꾼에게 청주와 이밥을 못 먹게 한단 말을 듣고’에서도 잘 드러나고, 농민들이 풀뿌리를 캐먹다 굶주려 쓰러지는 것을 보고 격분한 작품도 있다.
그래서 이규보를 두고 이이화는 ‘사회시 또는 농민시의 선구자’ 라고 일컫는다.
관념이 아니라 삶을 노래한 시인
우 리 문학사에서 이규보만큼 왕성한 창작 의욕을 보여 주는 사람도 보기 드물다. 《동명왕의 노래》와 《조물주에게 묻노라》에는 이규보의 문학 이론과 창작에 대한 견해는 물론, 역사 현실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더불어 자기 일상의 모습까지도 풍부하게 담아 냈다.
이 규보를 두고 ‘고려 시대를 대표하는 유물론 철학자’라고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우리 문학 최초로 리얼리즘 문학을 실현했다고 평가하는 것은, 격식과 규범을 차리지 않고 일상의 사소한 장면에 대해서 시를 쓰거나 쥐 같은 동물, 오얏 따위 과일을 두고 쓴 시들이 일정한 문학적 성취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규보는 ‘붓을 달려 시를 쓴다.’는 말 그대로 빠르고 능숙하게 시를 지었다. 술에 취해서도 운자에 맞추어 능수능란하게 작품을 지어 낼 수 있었던 그였던지라 풍류와 유머를 가득 담아 다양한 소재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모습을 보여 준다. 살아 있는 동안 8천여 수의 시를 썼다고 하나, 남아 있는 2천여 수의 작품만으로도 이규보 문학이 지닌 깊이와 넓이를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남의 것을 도둑질하지 말아라” : 진보적 문학 사상가
이 규보는 시를 쓸 때 무엇이 중요한지 ‘시에 대하여’라는 시에서, “더욱이 버려야 할 것은 깎고 아로새겨 곱게만 하는 버릇. 곱게 하는 것이 나쁘기야 하랴. 겉치레에도 품을 들여야 하지만 곱게만 하려다 알맹이를 놓치면 시의 참뜻은 잃어버린 것이다.”라고 했다. 왜 시를 쓰는지를 밝히는 글도 썼고, 고문을 인용하거나 당나라와 송나라의 시풍을 그대로 따르기만 했던 세태를 비판하기도 했다. 시를 짓는 데 아홉 가지 좋지 않은 체가 있다고 밝히면서 ‘시 구상의 미묘함을 간단히 논평한다’는 글을 쓰기도 해, 당대와 후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이규보는 널리 알려진 명문을 가져와 자기 것으로 삼으려는 것을 도둑질이라고 나무라면서 ‘나 홀로 말과 뜻을 아울러 창조하였으니’라는 산문을 썼다. 또한 자기 삶을 독창적으로 담지 않고서는 좋은 문학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기존의 표현에 매이지 않고 현실을 새롭게 인식해야 하고, 그러면서 생동감 있는 표현을 찾아내야 한다고 거듭 밝혔다.
고려 시대 온갖 자료의 박물관, 이규보의 시
이 규보가 쓴 시의 소재는 굉장히 다양하다. 딱따구리, 매미, 번데기, 앵무새, 거미 그물, 물고기 같은 동물을 소재로 한 시가 있는가 하면, 밥알꽃, 석류꽃, 배꽃, 사계화, 해당화, 홍작약, 금전화, 동백꽃 같은 식물을 두고 자세히 살펴 쓴 시들도 많다. ‘추위 막는 목서화’, ‘늙은 무당’, ‘늙은 기생’ 같은 시들에서는 당시 문화를 엿볼 수 있고, ‘오얏을 먹으며’, ‘능금을 먹으며’, ‘찐 게를 먹으며’ 따위 시에서는 고려 시대 식생활을 엿볼 수 있다.
‘술 깨는 풀’ 같은 시로는 고려 사람들의 약초 씀씀이를 알 수 있고, ‘푸른 사기잔’, ‘질항아리의 노래’를 통해서는 고려 청자 문화의 발달사를 알 수 있다. ‘손득지의 차운에 대한 노래를 화답하노라’에서는 다도 문화가 고려 때 크게 발달했음을 확인할 수 있고, ‘을유년 과거장에서 글을 고열하며’ 같은 시를 통해서는 당시 과거 제도의 구체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이규보는 다양한 소재를 자유자재로 읊어 놓아 후대 사람들이 당시 생활상을 구체적으로 알게 해 준다.
《조물주에게 묻노라》
이 규보의 삶과 문학을 잘 볼 수 있는 시 140여 수와 ‘백운소설’, ‘국선생전’을 비롯해 ‘조물주에게 묻노라’ 같은 빼어난 산문 작품 70여 편을 묶었다. 고려 최고의 문장가인 이규보 문학을 북의 생동감 있는 번역으로 만날 수 있다.
꿈속에서 또 꿈을 꾸노라
‘규 정閨情’, ‘길가에 버린 아이를 두고〔路上棄兒〕’, ‘거문고〔素琴〕’, ‘꽃을 시샘하는 바람〔妬花風〕’, ‘벗이여 두 가지를 경계하게〔二誡詩贈友人〕’처럼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시를 썼던 이규보의 작품 세계를 한눈에 알게 하는 시 102편을 모아 엮었다. 일상의 이야기를 충실하게 담아 낸 시를 통해 격변기를 살다 간 이규보의 삶을 볼 수 있다.
시 짓는 병
살아 있는 동안 8천여 수의 시를 지은 이규보가 문학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떻게 시를 써야 한다고 했는지 써 놓은 시들을 담았다. ‘시 짓는 병〔詩癖〕’을 비롯해 ‘시고를 불사르고〔焚藁〕’, ‘나를 적선이라 부른 친구에게〔次韻尹國博威見予詩文以詩寄之其序目予爲謫仙予拒之〕’, ‘세 가지 마〔三魔〕’ 같은 시 33편을 담았다.
지혜 밝은 군자를 기다리며
이 규보는 탁월한 문학 평론가였다. 시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문학관을 논한 글과 다른 이의 작품을 두고 좋은 문학이란 어떤 것인지 평한 작품도 많이 남겼다. ‘시 귀신을 몰아내는 글〔驅詩魔文〕’, ‘시를 평론하는 이야기〔論詩說〕’, ‘술 마시고 시 짓는 내기를 하는 것은〔論走筆事略言〕’ 따위의 작품 20편을 만날 수 있다.
조물주에게 묻노라
우리 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 ‘국선생전麴先生傳’과 깊은 철학을 담은 ‘조물주에게 묻노라〔問造物〕’ 그리고 ‘노극청전盧克淸傳’, ‘돌의 질문에 대답하노라〔答石問〕’ 같은 빼어난 산문 작품 24편을 담았다.
큰 가난뱅이가 작은 가난뱅이에게
우 리 산천의 아름다움을 호방하게 읊은 ‘남행월일기〔南行月日記〕’를 비롯하여 ‘나 홀로 즐거운 집〔桂陽自娛堂記〕’, ‘만물이 태평하니 마음 또한 평안하다〔泰齋記〕’, ‘산수도 뜻이 있거든〔赫上人凌波亭記〕’ 같은 기문과 서문들 17편을 모아 엮었다.
홀로 맑게 살다 간 이여
거 란, 몽고 등이 침입했을 때 큰 공을 세운 조충 장군이 죽자 조충 장군의 행적을 기려 쓴 ‘백성 위해 오셨다가 어찌 그리 빨리 가셨는가〔趙公誄書〕’를 비롯하여 ‘공이 끼친 사랑 백성 마음에 남았으니〔尹公墓誌銘〕’, ‘스스로 기른 범에게 물리겠습니까〔答東眞別紙〕’ 같은 짧은 산문들 9편을 모아 엮었다.
꿈속에서 또 꿈을 꾸노라 - 규정 외 시 105편
시 짓는 병 - 시 짓는 병 외 시 28편
지혜 밝은 군자를 기다리며 - 시 귀신을 몰아내는 글 외 20편
조물주에게 묻노라 - 조물주에게 묻노라 외 22편
큰 가난뱅이가 작은 가난뱅이에게 - 남행월일기 외 17편
홀로 맑게 살다 간 이여 - 백성 위해 오셨다가 어찌 그리 빨리 가셨는가 외 9편
이규보 연보
이규보 작품에 대하여 - 김하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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